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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Oct 31. 2024

이토록 위험한 동요

D+102, 하루종일 반복되는 노래


이제 튼튼이가 노래를 듣고 반응하는 것 같다. 반응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음악을 즐기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몸을 흔들면 따라 흔드는 것 같기도, 그냥 무의미한 몸짓 같기도 하다. 어쨌든 노래를 틀면 눈빛과 움직임이 살짝 다르다.

동요를 들으니 가사가 아름답고 시적이어서 좋은 노래도 있고, 유치한데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노래도 있다. 노래를 듣다 보니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꼬까신>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살짝 신벗어 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갔나

가지런히 기다리는 꼬까신 하나


참 좋은 동요다.


'꽃그늘'이라는 단어는 노란빛의 그림자가 듣기만 해도 화사하게 펼쳐진다.

'꼬까신'은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단어다. 꼬까라고 언젠가 쌍기역을 발음하면서 재미있어하겠지.

'한들한들 나들이' 라니. 아이가 걸으며 뒤뚱거리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게다가 나들이랑 한들한들의 리듬감이 매우 좋다.

'가지런히'라는 말도 그립고 다정하고 단정하다.


그런데

책을 펼쳐 노란 개나리 꽃그늘을 보여주며 튼튼이에게 노래를 불러주다 이 노래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봄날에 아이가 신을 벗고 잔디를 돌아다니면 쯔쯔가무시병에 걸릴 수 있고 쯔쯔가무시 병에 걸리면 구토와 발열증상이 있을 것이다. 애가 나들이 다녀왔다가 아프면 소아과에 오픈런해야 한다. 봄에도 조심해야 하고 가을에도 조심해야 하고.. 그러면 아이랑 다닐 때는 돗자리가 반드시 필요하겠다. 엄청 큰 돗자리..



<개굴개굴 개구리>


개굴개굴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개굴개구리 목청도 좋다.


개굴개굴이 재밌어서 튼튼이가 좋아했다. 노래를 틀면 다리를 개구리처럼 파닥거린다.

밤새도록 우는 개구리 소리가 대학생 시절 한 여름의 기숙사의 풍경과 더불어 떠오른다.

논두렁 근처를 걸어가면 조용해지고 또 멀어지면 커지던 그 개구리소리.


그런데 부르다 보니 굉장히 가부장적인 노래이다. 멤버들이 남성중심의 가족 구성이다. 아들 손자 며느리라니. 여기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성은 '며느리'라고 불린다. 시댁 어르신이 만든 노래인가.


게다가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는 인간중심적인 생각이다. 얘네들은 짝짓기를 하려고 우는 거고, 자기들끼리 전국노래자랑을 열고 괜찮은 목청의 개구리를 만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거다. 인간이 안 듣는다고 '듣는 사람 없어도‘라고 개굴개굴 소리가 의미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사람이 꼭 들을 필요가 있나.

남자인간중심의 노래 같으니라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잔다

칙 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옛날 동요가 좋은 건 단어들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오막살이'라는 말을 언제 써본 적이 있었을까? 허술하고 초라하고 작은집에 산다는 '오막살이', 책을 읽거나 동요를 듣지 않으면 안 쓸 말이다.

'칙칙폭폭'을 하면 튼튼이가 좋아한다. 단어를 들으면서 소리가 특이한가 보다. 기차를 가리키며 칙칙폭폭 기차 라고 하면 유심히 본다.

'기차소리가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잔다'

집에서 들리는 기차의 데시벨은 50db 정도. 어쩌면 기차 소리가 아이에게 백색소음 역할을 해서 잘 자는 것일 게다. 튼튼이는 요즘 드라이기를 틀면 잠을 잘 자기 때문이다. 드라이기의 데시벨도 50-70 사이이다. 규칙적으로 시끄러운 게 아기 취향인가 보다. 기찻길 옆이어도 아기는 살만하겠다 싶다. 부모님은 간헐적으로 시끄러워서 매우 힘들겠지만..


<다섯 글자 예쁜 말>


한 손 만으로도 세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말 정겨운 말

한 손 만으로도 세어 볼 수 있는

다섯 글자 예쁜 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워요

노력할게요

마음의 약속 꼭 지켜볼래요

한 손 만으로도 세어 볼 수 있는

다섯 글자 예쁜 말


손가락을 펴고 접으면서 다섯 글자를 세고, 저런 단어를 오물오물 말하면서 익히려고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말들을 노래로 익히는 게 얼마나 좋은가.

근데 고맙습니다랑 감사합니다는 비슷한 의미인데 굳이 가사에 둘 다 넣어야 했나? 미안합니다를 넣으면 어땠을까? 프랑스에서는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부탁합니다', '다음에 만나요'가 아이들에게 예의와 배려를 보여주는 마법의 단어라고 가르친다.


이 노래에는'미안합니다'가 없다. '미안합니다'는 사회생활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 아이의 도덕성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도덕성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중심감정이다. 자신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시인하고 용서받으며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 수 있는데 미안합니다가 없다니!



아아 동요 작사가 정수은님 좋은 노래 만드셨는데 딴지걸어서 새삼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름다워요



<유치원에 갑니다>


쨍쨍쨍쨍 쨍쨍쨍 쨍쨍 해가 떴어요 어디 가세요 나는 유치원에 갑니다

쭉쭉쭉쭉 쭉쭉쭉 쭉쭉 비가 오는데 어디 가세요 나는 유치원에 갑니다

쌩쌩쌩쌩 쌩쌩쌩 쌩쌩 바람 부는데 어디 가세요 나는 유치원에 갑니다

펑펑펑펑 펑펑펑 펑펑 눈이 오는데 어디 가세요 나는 유치원에 갑니다


의성어, 의태어가 조화롭게 쓰인 노래. 반복적이어서 아이들이 부르기에 참 쉽겠다 싶었다. 근데 비가 오고 바람 불고 눈이 올 땐 집에 있는 게 안전한 거 아닌가? 왜 이렇게 유치원에 기를 쓰고 가는 것인가?

듣다가 남편이 이상한 노래라고 했다.

꼽씹어보니 이상하긴 한데 아이들이 얼마나 유치원에 안 가면 이렇게 노래를 만들었나 싶다. 유치원 가기 싫어~~~ 으앙!!! 하는 애가 있으면 저 노래를 틀어준다. 노래를 듣고 ‘아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와도 유치원에 가는구나. 성실한 아기는 유치원에 가는구나. ’하고 납득하는구나 하고.


근데 비와 눈이 많이 올 땐 유치원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쉬어야 한다. 근로자도 노동자로 바꿔부르자고 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몇 년째 근로자라고 명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 노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유치원부터 매일매일 출석하라고 하는 전근대적인 노래의 표본이다. (하지만 튼튼이가 유치원 안 가면 유치원에 갑니다를 부르면서 신발을 신겨주겠지)


요즘은 어떤 노래가 좋은지 듣질 않으니 통 모르겠다.

하지만 동요만 들을 수 없다.

수준을 높여보자.


콜드 플레이가 내한한다고 하니 viva la vida를 틀어봐야겠다.


인생이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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