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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Nov 07. 2024

두근두근 외출대작전

D+115, 한 번 나가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튼튼이가 태어나고 90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아 90일만 기다린 건 아니다. 모유수유가 좀 편해진다는 50일도 기다렸고 기적과 기절 중 하나라는 100일도 기다렸는데, 90일은 좀 달랐다. 90일은 튼튼이가 어떤 성장상태가 되든 상관없이 행복해지는 날이었다.



그거슨 바로 '외출이 가능해지는 날!'



4357년 전의 호랑이가 100일을 못 채우고 뛰쳐나간 슬픈 사정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호랑이는 쑥과 마늘이 싫었던 게 아니다. 배고프면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먹어봤다. 데친 브로콜리도, 소금을 넣지 않고 삶은 닭가슴살도 배고프면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며 먹게 된다. 하지만 동굴 안에만 있는 건, 집 안에만 들어앉아 있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답답하다.



친구인 보나 엄마는 미칠 것 같아서 50일부터 나갔다고 하는데 날씨 때문에 더욱 그러질 못했다.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지나고 디데이 달력을 아무리 넘겨도 지독한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시원한 곳으로 간다 해도 건물로 들어가기 전의 그 찜통더위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그렇게 이리하여 드디어 맞이한 90일. 한낮의 기온도 25도 이하로 떨어졌다. 외출을 할 수 있게 됐다. 아니 외출을 해야만 했다.





외출 첫날, 우리는 집 앞 놀이터로 향했다. 텀블러에 내린 커피를 마시며 근처를 한 두 바퀴만 여유롭고 간단히 돌고 올 계획이었다.


세 달 된 아기는 볕을 직접 쬐면 절대 안 된다기에 햇살에 가장 주의했다. 볕이 들어오면 유아차 커버를 닫았다. 그러다 답답할까 봐 바람을 쐬게 해 주려고 다시 열었고 또 놀이터를 돌다가 볕이 보이면 다시 커버를 닫고 좀 걷다가 튼튼이 얼굴이 안 보여서 다시 열었다.


나무 옆에 있던 벌레가 보여 지나가다 물지 않을까 싶어 온몸으로 방어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꼬마가 유아차를 덮칠까 봐 꼬마의 자전거 운전 실력을 자꾸만 곁눈질로 평가하게 되었다. 이사하던 사다리차가 왠지 무서워서 주춤거리며 걸었다.


하아. 이게 산책이라고?


너무 피곤해졌다. 한 시간이 흐른 듯했다. 시계를 보니 15분이 흘렀다. '첫 외출은 짧게 해 보라'는 육아책의 지시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잔뜩 긴장할 부모를 위해서였던 거였다. 긴장한 초보 부모는 몇 번의 산책을 하고서야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할수록 아이가 잘 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볕이 없는 방향으로 커피를 마시며 어느 정도 바깥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밖에서 못 놀 때는 어디로 산책을 가야 하나.



유아차가 다녀도 폐 끼치지 않을 넓은 복도를 가지고 있고

수유실도 있고

아이 엉덩이 씻길 공간도 있고

온도와 습도가 적절하고

유아차가 들어갈만한 큰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그렇다. 백화점이다.


미혼일 때는 백화점이 아이가 오기에 천국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엘리베이터에 유아차가 꽉꽉 들어찰 때마다 몸을 움츠리며 '팔자 좋은 아줌마들이 맨날 애기들 데리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며 다니네'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겪어봐야 안다.


‘팔자 좋은 아줌마들이 맨날 애기들 데리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며 다니네’가 아니라 다른 데서는 애 데리고 다니면 아기의자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천대받는 애엄마들이 그나마 기저귀도 편히 갈고 유아차도 맘껏 끌 수 있는 백화점을 숨 쉴 구멍 삼아 겨우 나오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백화점의 수유실을 들어가 보고는 호텔도 이런 수유실을 갖추진 않을 거라며 매일 이곳을 산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럼 주차는?


Mvg가 되면 주차는 공짜다


Mvg가 되려면 얼마를 쇼핑해야 하나


천만원부터.



그냥 어플에서 한 달에 두 개 주는 무료주차권을 쓰자. 둘이 합치면 네 개나 된다


좋아



근데 mvg가 뭔 약자야

Most very government 가장 정말 정부?



??????(아직도 뇌가 없는 건가)





(*Most valuable guests : 가장 돈 되는 손님)




이제 매일매일 산책을 한다.



가을이 왔고 볕도 바람도 단풍도 좋아서 유아차를 끌고 동네를 슬슬 다니는데 인도 위에 차가 서있다. 내 한 몸이면 그냥 지나가겠는데 유아차가 있으니 왔던 길을 돌아가 맞은편 인도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다시 지나야 한다. 에잇.


카페를 가려고 해도 작은 계단이 두 세개만 있어도 진입하지 못한다. 머리 속에 경사로와 엘레베이터 위치 지도를 요리조리 고민하고 그려야 헛걸음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유아차를 끌면서


경사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엘레베이터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인도의 포장상태가 보행여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매일매일 뼈저리게 느낀다.


바퀴 달린 걸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고통받았겠구나.


모두의 편의를 위해 편의점에 경사로를 내라는 판결이 나와도, 바퀴 달린 걸 타는 사람은 대형마트를 가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자들이 입법하는 불편한 세상.


잠시 외출하는데 대 작전씩이나 세워야 하는 슬픈세상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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