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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Nov 14. 2024

'엄마가 ***'는 금지어입니다.

D+125, 지속가능한 육아를 위하여

학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못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항상 본인 탓을 했다.


‘학원에 미리 안보내서 그런가 봐요’

‘그때 이사를 해서 문제가 됐나 봐요’


아닙니다. 공부는 자기가 안 한 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자기가 노력해야 할 일이죠. 지팔지꼰이에요. 절대 미안하다는 감정 갖지 마세요.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고 이렇게 예쁘게 키워서 학교 다니고 있잖아요. 잘하고 계세요. 아이가 할 몫에 부모님이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위안이 됩니다. 근데 그게 잘 안되네요'



흠. 과거의 나. 쉽게 말한 거 반성한다.

알아도 그게 잘 안된다.


엄마가 되니 아이에게 '안'미안하기 쉽지 않다.




한 달째 튼튼이 체중이 제자리걸음이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하나도 안 큰 것 같은데 300그램 정도 늘었다. 하루에 적어도 15그램은 늘어야 하는데 먹태기 이후에 증가가 너무너무너무 더디다. 하위 5 퍼센타일로 태어나 70 퍼센타일까지 찍다가 이제는 50 퍼센타일에서 아래로 살짝 내려가는 곡선을 그린다. 안돼. 안돼.


그렇게 적게 먹기 시작하면서 젖양도 조금씩 줄었다.


철분이 부족해서 그런가, 유산균을 적게 먹어서 그런가, 휴식을 덜 취해서 그런가, 가슴 마사지를 안 해서 그런가 하면서 온갖 짓을 다 했다. 분유보충은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고 싶었다. 분유 보충을 하게 되면 젖양 늘리기는 끝이기 때문이다. 분유를 주면 아이가 젖을 덜 빨게 되고 그러면 젖이 더 줄어버린다. 젖양이 줄면 줄수록 세게 빨아야 젖이 나오는데 분유를 먹으면 젖병을 조금만 빨아도 쉽게 나오니까  아이가 분유를 선호하게 되고 결국 모유는 엔딩이다.


1. 철분이 부족해서 그런가, 철분 보충제를 먹었다 -> 소용없다. 엄마가 철분이 아무리 많아도 모유로는 적정량만 들어간다. 그래서 모유 먹는 애들은 철분이 부족하면 보충제를 직접 먹으며 철분을 보충한다.


2.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락토핏을 먹었다.->  소용없다. 장운동이 무슨 상관이람. 단지 내가 화장실을 잘 가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는 따로 비타민D와 프로바이오틱스가 함께하는 영양제를 먹고 있다. 예의상 먹어봤다.


3. 소의 젖을 먹으면 사람의 젖도 많이 나올까 봐 2리터 우유를 컵에 담지도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 땡이다. 2리터는 너무 많아서 먹다 말았다. 양심상 입을 대지 않고 벌컥벌컥 마셨으나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만 들었다. 우유든 두유든 주스든 물이든 수분만 흡수하면 되는데 젖소의 기운이라도 받아보려 했다.


4. 모유촉진제를 먹었다. '맘라떼모아'와 '마더러브모어밀크플러스' 이름도 길다. 어쨌든 두 개를 먹어봤다. 맘라떼모아는 밀크씨슬 성분이 주된 거라 샘플로 받은 한 봉지만 먹다 말았고 마더러브모어밀크플러스(이하 마더러브)는 당근에 15000원으로 팔길래 구매했다. 이게 효과가 있다는 간증글과 모유가 적게 나오니 물을 하루에 3리터씩 먹고 유축하고 이짓저짓 다하면서 촉진제를 먹어서 젖이 나온 것 같다는 글이 있어서 좀 미심쩍었으나 그래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먹기 시작했다. -> 아직 모르겠다. 먹으면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하며 마약을 찾는 것처럼 약통을 열어 알약을 삼키고 안도한다.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수분섭취과 유축이다.



그래 역시 正道를 걸어야 한다.



생수병을 들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입에 물을 들이붓는다. 이러다 전해질불균형으로 몸이 흐느적거리면 어떡하나 근심하면서 임신했을 때처럼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튼튼이를 인간 유축기(젖을 다 먹고 난 후 몇 분 뒤에 다시 튼튼이에게 사정사정해서 한 두 번만 젖을 빨아달라고 한다. 그러면 빈 젖을 튼튼이가 옛다 하며 빨아주는데 이거시 바로 인간 유축기다)로 쓰면서 계속 젖이 나올 수 있게 젖과 뇌를 자극한다.




젖양이 늘긴 했다. 튼튼이가 먼저 입을 뗄 때가 늘어났다. 휴우. 하지만 튼튼이가 젖을 적게 먹을 때면 '마더러브 먹어서 메이플시럽 냄새가 나서 그런 건가', '자세가 이상해서 그런 건가'라며 또 내 탓이 시작된다.


오늘 4개월 접종을 하러 간 소아과에서 체중 증가가 작아 빈혈 검사를 했다. 모유를 먹이냐 분유를 먹이냐 물어봐서 모유를 먹인다고 했더니 의사샘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모유는 최고의 성분이죠, 모유는 분유처럼 측정하기 힘들어서 아이가 얼마나 먹는지 몰라서 걱정이 많으시죠' 라고.  


이제껏 만난 소아과 의사샘들은 모유수유 하는 나를 '안아키엄마'취급을 했다. 첫 번째 의사샘은 엄마 몸 힘들게 모유를 왜 먹이냐는 식으로 말했고 두 번째 의사샘은 젖양이 지금은 많아도 반드시(!) 줄어드는 때가 오니 애가 부족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분유보충을 하라고 했다. 이 말은 마치 내게 저주처럼 따라다녀 모유가 부족하면 어떡하나 모유가 진짜 부족한 건가 하며 나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병원만 다녀오면 모유 먹이는 내가 아이에게 큰 잘못을 하는 것 같아 속상했었는데 ‘걱정이 많으시죠’라는


한 마디에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하며 안도와 함께 감사의 마음이 차올랐다. 모유수유를 칭찬하는 의사샘은 처음이었다. 이 분의 이름과 모유수유를 같이 넣어 검색해보니 '황달로 광선치료를 할지라도 모유수유를 지속해도 된다'는 논문을 썼더랬다. 역시. 앞으로 선생님께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가스라이팅도 아니고 스스로 모유라이팅을 하며 지냈던 한 달간의 세월을 청산하기로 했다.(라고 하지만 잘 안된다)이건 선언이다. 열심히 물 마시고 잘 먹이면서 너에게 모유를 주는 나를 질책하지 않겠다.



지금 체중 증가가 더디고 젖양이 줄어든 건 튼튼이 너 때문이다. 젖이 콸콸 나올 때 에구 하면서 얼굴 돌리고 안 먹은 튼튼이 네 탓이다!!!



엄마는 미안하지 않다. 최선을 다하여 너를 먹이고 있으니 너도 하던 대로 열심히 젖 먹던 힘을 다하여 젖을 먹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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