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134 이제는 좀 들었나
검사 결과가 나왔다. 튼튼이는 빈혈이다. 헤모글로빈 수치와 그 외 다른 수치들도 낮은데 그중에서 제일 낮은 건 저장철이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부터 받은 철이 완전히 바닥났다. 보통의 아기들은 태어나고 6개월쯤 되면 저장철이 부족해지고 이때부터는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음식 섭취로 철분을 먹어서 다시 회복이 된다.
하지만 튼튼이는 태어난 후로 2개월 간 체중의 2배가 되는 급성장을 하면서(보통의 아기들은 100일쯤 2배가 된다) 몸속에 갖고 있던 철분을 다 써버렸다. 특히 모유수유를 하면 철분이 모유에 아주 소량만 포함되어 있어 분유아이들보다 더 빨리 철분이 소모된다. 분유에는 철분이 들어있기에 분유 아이들은 빈혈이 적다는데, 또 이건 모유가 흡수율이 높아서 결과적으로는 철분이 거의 배출되는 분유랑 비슷하다고 주장하며 누구는 모유 먹어서 빈혈이 온 건 아니라고 한다.
채혈을 하자고 한건 우리 쪽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체중이 50 퍼센타일이라 정상이고 지금이 단순한 정체기일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베싸육아'에서 모유를 먹는 아이 중에 급성장한 아기가 빈혈이 오면 위험할 수 있다는 글을 유심히 읽고 이번 접종 때 빈혈검사를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육아 책을 너무 많이 읽어 혼란이 올 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큰 도움이 됐다.
어쨌든, 이제 4개월 된 튼튼이는 철분을 먹기 시작했다. 액체로 된 철분제라 스포이드로 눈금을 측정해서 입에 떨어뜨려야 한다. 튼튼이 입에 한 방울을 넣었더니 쇠맛이 나는지 혀로 밀어낸다.
으악 온 입과 혀와 옷이 시뻘게졌다. 스스로 진정하고 싶었는지 빨간 입에 손을 넣어서 쪽쪽 빤다. 손가락도, 매트도 피칠갑이다.
1차 시도 실패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접종 때 주사기를 아이 입에 넣어 약을 먹이는 것을 기억하여 우리도 약 먹일 주사기를 샀다. 위대한 쿠팡은 다음날 주사기를 바로 배송해 줬다.
자 시작하지.
남편은 외과의사가 된 양 섬세한 손놀림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튼튼이가 먹어야 할 양을 주사기로 빨아들인다. 이번에는 피칠갑사태를 막기 위해 튼튼이 옷의 목 부분에 손수건을 끼워 넣었다. 뱉어낼 때 닦을 것을 대비해서 어제의 전투로 시뻘건 자국이 남은 다른 손수건도 옆에 뒀다. 튼튼이의 정신을 빼앗을 튤립도 준비했다.
준비 됐습니다.
튼튼이를 안고 튤립을 이쪽저쪽으로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시선을 빼앗은 틈을 타 철분제가 든 주사를 입안에 넣었다.
우으~ 튼튼이가 인상을 찌푸린다.
튼튼아 먹어 꿀꺽~ 꿀꺽! 튤립 봐바 튤립 아하하하하하. 안돼 안돼 안돼 뱉지 마 뱉지 마 우르르르르 개나리 노란 꽃그늘아래 ~~ 여기봐바바바 까꿍까꿍
후 성공이다.
어제의 1/2만 뱉어낸다. 손수건을 받쳐도 옷은 또 피칠갑이지만 뭐 이거야 빨면 된다. 이제 이 옷은 당근은 불가능해지겠지만. 일단 먹었으니 됐다.
철분을 먹으면 변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틀 뒤에 똥을 쌌다. 변비는 오지 않을 건가 보다. 똥색깔은 어둡다. 그리고 쇠 냄새가 가득하다. 이제 황금색의 밥을 갓 지은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유아기 똥은 다시는 볼 수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머리에서 나던 꼬릿 한 우유 냄새도 쇠 냄새로 바뀌어서 그것도 벌써부터 그립다.
며칠 새 먹는 양이 늘고, 먹는 속도도 빨라졌다. 신생아 때는 60ml를 먹을 때 30분 걸리더니, 50일 되어서는 100ml 먹는데 15분이 걸렸다. 지금은 100ml 먹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 빠는 힘이 그새 세 배가 되었다. 헤모글로빈 파워!
철든 아가 튼튼이가 된 것인가.
이렇게 빨리 젖 먹다가, 이유식 하다가, 밥도 먹고 똥도 어른똥처럼 싸겠지. 젖비린내 나는 시기가 얼른 끝나버렸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흐르고 그리워진다. '오' 표정도, 머리 냄새도, 꾸벅꾸벅 졸면서 하던 무한 반복트림의 시간도 어느새 지나가 버렸다.
튼튼이가 어서 철이 들길 바랐는데 또 철드는 게 아쉽다.
알다가도 모를 육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