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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피디의 제작노트 Oct 24. 2021

조물조물 동글동글 살아가는 법

아들에 대하여


# 가족놀이 ‘주먹밥’


주말 오전, 토요일은 늦잠자기 딱 좋은 날이다. 거실에서는 아빠가 두 아이와 함께

TV를 보며 놀고 있다,  

빼곡히 열린 문사이로 병구가 여자 친구와 통화하고 있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랜만에 푹 잔 엄마는 점심에 가까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가 유독 바빠 보인다. 큰 양푼에 밥과 잘게 썬 

당근,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비고 있다. 그리고 햄, 참치, 치즈너깃, 마요네즈, 

파슬리 등등 펼쳐 놓은 식재료에 부엌이 좁아 보인다.

엄마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요란하게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여보! 거기 좀 치워줘 ~ 곧 가져갈게” 

거실에 소파를 밀어내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있는 아빠, 엄마가 병구에게

나오라고 재촉한다.

거실에 온 가족이 둘러서 앉았다, 엄마, 병구, 아빠, 우람, 해미, 

이렇게 다섯 가족이 가운데는 온갖 식재료를 바라보고 있다.  먹방비닐장갑을 

나눠주며 엄마가 말을 한다.


       엄마      오늘은 다 같이 점심을 만들어 보자, 주먹밥이야!

       가족들    와~우

어린 두 아이는 신이 났다. 아빠는 기대되는 표정이고, 병구는 ‘뭐지’ 의아한 표정이다


        아빠    자, 모두 먹방 장갑을 끼고 주먹밥을 만드는 거야, 10개 씩 ~


어제 오후부터, 부부는 교수님이 내 준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가족이 모두 다 같이 할 수 있는 놀이가 뭘까?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다.

‘먹방 놀이 겸 식사준비’

어린 우람이와 해미도 같이 해야 되니까, 운동은 편먹기 힘들고, 쌀쌀한 날씨 때문에 

바깥나들이도 마땅치 않고, 이리저리 궁리하다 점심을 같이 만들어 먹기로 한 것이다,

놀이가 되어야 하니 규칙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부부가 합심해서 정한 규칙은 뭘까?


        아빠    자~ 그럼 아빠가 설명해 줄게, 첫째 10개씩 만 만들어야 해요, 정성을 

                다해서, 그리고 서로 자기가 만든 주먹밥을 갖고 품명회를 할 거야 

                그 다음에는 먹고 나서, 제일 맛있는 사람에게 상을 줄 거야 ~ 알겠지?

        병구   네 ~ 근데, 상은 뭐예요?

        엄마   그건 비밀, 나중에 알려줄게

        아빠   자 ~시작!


처음 해보는 가족놀이. 이들은 또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먹방장갑을 끼고 밥을 조물 대는 우람이에게 엄마가 말을 건넨다.

        엄마   조물조물 해야지 

        우람   이렇게 조물조물

        엄마   병구야 왜 이렇게 많이 넣었어?

        병구   그러게, 많이 넣었네


병구는 ‘쉽게 만 보였던 주먹밥 만들기‘가 익숙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아직은 덜 친절한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이건 진짜..이건 길잖아, 아 이거 다시 만들어, 그렇게 하면 넌 빵점이야.

        병구    다시 해야 해요~  할 수 없네

        남편    병구야 이렇게 조물조물 해야지~

        병구    조물조물,,


 ‘조물조물’ 김피디는 엄마 아빠가 주는 말이 참 신선하다고 느꼈다. 그래, 빨리 가는 것 보다

 오히려 ‘조물조물 바뀌는 게 더 오래 갈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가끔씩 두 아이를 데리고 주먹밥 유부초밥 같은 것을 만들어 먹었다. ‘아이들이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병구 보다 익숙한 솜씨로 주먹밥을

만들어 낸다. 엄마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많은 시간동안 ‘병구와 뭔가를 함께

만들어 먹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을 준다는 약속에 가족 모두 열심이다. 아빠도 조금은 이기적으로, 갖은 모습을 내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엄마가 또 병구에게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는 안 고쳐지는 병인 모양이다.


          엄마    병구야 ~동글동글하게 만드는 거야. 이렇게 엄마처럼 동글동글, 

                    흘리지는 말고 ..

          병구    알았어요 동글동글..


오늘은 참 이쁜 말이 많이 나온다 ‘동글동글’ 이 가족의 관계가 동글동글 해졌으면 좋겠다.

그래 조물조물 느리게 움직이다 보면 동글동글 해지는 관계가 되겠지.


          해미  엄마 동글동글 했어 

          엄마  동글동글, 잘했어. 


옆에 있는 해미가 곧 바로 따라한다, 이런 시간이 지금까지 왜 없었을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이라도 느껴서 다행이야!’

엄마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과 놀고 있다.


가족의 중심은 항상 부부다, 부부라는 튼튼한 반석위에 가정이라는 집을 짓는다, 

부부가 흔들리면 집은 무너질 것이다, 엄마 아빠가 변하면 가족도 변할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행동이 변하고 생각이 달라지니까 ,병구와 아빠의 관계가 달라지고, 

어린 우람이와 해미의 행동도 달라지고 있다.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같은 놀이를 하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엄마는 조그만 행복을

느껴가고 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모두 10개씩 주먹밥을 만들어 놓았다. 

자기의 손으로 조물조물 만든 주먹밥들이다, 

모두가 심사위원이 되어서 먹어보는 주먹밥! 맛보다 마음으로 먹는 주먹밥!

막내 해미에게 가장 많은 별점이 주워졌다, 하지만 상은 골고루 주어졌다.

상은 이미 정해져 있었네, 아빠가 준비한 선물을 하나씩 나눠준다.


         해미~   스티커 북  

         우람~   로보트 장난감

         병구~   용돈 2만원!

엄마가 병구에게 웃으며 한마디 한다.

         엄마    병구는 태어나서 상을 처음 받아보네

         당신~  상품권 5만원 

아빠가 ‘나는?“하고 너스레를 떤다. 아내가 남편한테 가서 볼에 뽀뽀를 해준다. 

가족 모두 박수 치며 “와~우” 환호를 한다.

이렇게 가족들은 1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100만원보다 큰 행복을 얻었다.

말랑말랑한 관계 다음은 무엇일까?

김피디는 ‘이제 본격적으로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다.


먹방 놀이게임 ‘주먹밥 만들기’도 끝나고, 점심은 시식회로 대신했다.

잠시 후, 병구가 옷을 입고 현관으로 가고 있다. 

 병구 다녀오겠습니다

거실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던 남편이 병구에게 말을 건넨다

 아빠 지금부터 나가서 노는 거야? 집에서 좀 쉬지 

 병구 쉬려고 했는데, 친구가 고기 사준다고 해서요


간단한 목례를 하고 현관문을 나선다. 편안해 보이는 가족들이 보인다.

그런데 김피디의 고민이 깊어 간다. 

“이제,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잠시 후, 비어있는 병구의 방으로 아빠를 불렀다. 아빠에게 병구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들어야 했다.

병구의 방에 아빠와 김피디가 마주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김피    요즘은 어때요? 마음이 좀 편안해 지셨어요?

        남편    네~ 아까 보셨잖아요.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인사도 하고..


남편은 이젠 좀 편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병구문제가 발생하면, 남편에게 먼저 알리고

상의하는 아내도 고맙고, 무엇보다 동생들과 놀아주려고 애쓰는 병구에게 아빠는 고맙게 

생각했다.

김피디가 병구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다.


        김피   병구를 언제 처음 만났어요? 만났을 때 기억나요?

        남편   제가 4학년인가? 3학년 겨울인가 쯤 처음 만났을 거예요

                 처음에 만날 때 안산 복지관에서 만났어요. 할아버지는 그 앞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었고 둘이서 살더라고요. 

        김피   그때, 당시 복지관에 있었어요?

        남편   네 아파트 단지 내에 복지관이 있더라고요, 복지관에 가보니까 애들 모여서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병구도 거기서 태권도도 하고..

.

김피디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편의 안색을 살피고 본론을 얘기한다. 

         김피    좀 불편한 얘기 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어떻게 보면 병구 성이 ‘박’씨 잖아요, 박병구! 아빠는 ‘한’씨 잖아요? 한석구!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편   그 생각도 해봤는데요 장남이 바뀌어져 버리잖아요 그게 ..

                  그런 것도 있고 바꿔줄 생각도 해 봤는데 맨날 말도 안 듣고 사고치고 

                  그런 것도 있고.. 장남이 바뀌는 문제도 있고..


남편도 호적문제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선뜻 결심하기는 힘든 모양이다.

병구는 동거인으로 돼 있다. 그냥 같이 살고 있는 사람, 호적부에는 

가족으로 등제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남편이 말한 ‘장남이 바뀌는 문제는 무슨 의미일까?“

지금은 호적에 우람이가 장남으로 되어 있는데, 병구를 호적에 올리면 장남이 바뀌는 것이다.

김피디가 이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물어본다.


       김피    현재 주민등록에는 올리신 거예요?

       남편    네~ 한 2년 정도 됐을 거예요

       김피    장남 문제가 걸리는 거죠?

       남편    장남 문제도 있고 제사 문제도 있고, 솔직하게 말해서 제사 같은 것도 

                 저희 집에서 지내는데, 애들이 계속 제사를 지내면 나중에... 

                제가 제삿밥을 우람이한테서 얻어먹고 싶지, 병구한테서 얻어먹고 싶지는 

                안잖아요? 

솔직한 남편의 대답이다, 아직 까지 병구를 아들로 받아들이기에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남편의 제삿밥 얘기에 김피디는 가장으로서 현실적인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아내의 생각이 궁금해진 김피디. 

        김피    아내분이 뭐라고 해요?

        남편   바꾸자고 그러죠 바꾸자고, 그런데 저는 생각 좀 해보자고 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죠.

김피디는 이 문제만큼은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과의 대화를 끝내고 다시 병구의 방으로 엄마를 불렀다. 그리고 병구의 호적문제에 

대해서 물어본다.

        김피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아내    그렇죠.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이혼도 많이 생각해 봤고 병구를 데리고 

                  이 집을 나갈까 생각도 많았죠. 하지만 정말 내 옆에서 많이 챙겨주고 하는 

                  사람은 저 사람 밖에 없는데, 병구한테도 어쨌든 '아빠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엄마의 고민을 잘 알고 있는 김피디.

엄마에게 아빠와 나눴던 얘기를 전달한다, 그리고 아빠의 생각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병구의 호적문제를 물어본다.

         김피    남편이 병구를 아들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힘든 부분이 있는데, 

                   어머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내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알고 있어요

         김피    성이 달라서 그런가요?

         아내    그런것도 있고, 정말 본인 아들이라면 저렇게 내버려 두겠어요? 

                  우람이나 해미한테 저렇게 끔직하게 잘하는데, 우리 병구는..

엄마의 눈이 촉촉해 진다, 엄마는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해 왔다. 아픈손가가락을 가진 

약자이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신혼 초에는 시댁식구들에게 ‘혹 붙이고 왔다’는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살아야만 했다. 

나는 혹까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았다.


김피디는 한 동안 엄마의 힘든 생활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병구문제에 집중을 해서

다시 질문을 한다.

           김피      병구문제에 대해서 남편과는 얘기해 보셨어요?

           아내      얘기 했죠? 병구 중학교 1학년 때, 2년 전에..

                      호적에 올려 달라고 얘기 했는데 ‘생각해 보자’라고 만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아무런 얘기가 없어요.

           김피     다시 얘기 해 보지는 않으셨어요?

           아내     더럽고 치사해서, 저도 아무 말 안했어요.


‘더럽고 치사해도 덮어 둘 얘기는 아닌데?‘ 김피디는 마음이 찹찹해 진다.

두 사람의 얘기를 모두 들었다. 어디서 접점을 찾아서 해결을 해야 하나? 

김피디는 더 이상 답을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서야 했다.


이것은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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