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 재정립하기
# 아들! 갖다 버려야지.
밖의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낙엽을 보던 때가 어제 같은데, 거리에는 눈이 쌓여 있다.
이제 12월 중순이 되었다, 화성 가족과 만난 지도 두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프로그램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지런히 가족들의 변화된 모습을 담아내야 한다.
김피디도 저번주 부터 편집을 시작했다.
요즘에는 하루만 가지 않아도 가족들한테 문자가 온다.
‘어제는 왜 안 왔어요? 오늘은 오시나요?’ ‘아저씨 왜 안와요?,심심해요’
‘요즘 바쁘세요, 오다가 안 오니까 허전하네’
늘 보던 사람도 있다가 없으면 섭섭한 모양이다. 김피디는 다시 병구네를 찾았다.
김피디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두 반기며 인사를 건넨다.
해미를 안고 쇼파에 앉아 있던 남편이 먼저 김피디에게 말을 건넨다.
남편 병구 양말 좀 한 번 찍어주세요
김피 양말이요?
남편 슬리퍼 신고 다녔던 양말이 이제 색깔이 바뀌었잖아요?
김피 요즘은 운동화 신고 다니지 않아요?
남편 그나마 지금 운동화 신고 다니니까 많이 양호해 진거죠. 아니면
저것도 아주 시커메져 가지고 들어왔을 거예요.
방안에 있던 병구가 나오면서 인사를 한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는 김피디.
시계은 6시? 웬일로 집에? 별일이라는 표정을 짓는 김피디에게
‘엄마가 일찍 들어오라고 했어요’라고 말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병구는 베란다로 향한다.
베란다에는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 중이다. 플라스틱 통에서 걸러진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서 병구에게 건넨다. 비닐장갑 낀 병구가 음식물 봉토를 들고 밖으로 향한다.
김피디가 신기한 듯 엄마에게 물어본다
김피 병구가 쓰레기 버리러 가는 거예요?
엄마 네~ 어렸을 때 쓰레기 담당은 병구였잖아요.
6학년 때 까지는 쓰레기 분리수거는 혼자서 다 했어요.
엄마는 신이 나서 때 아닌 아들자랑을 한다. 김피디는 카메라를 들고 병구를 뒤 쫒아 간다.
음식물쓰레기봉지를 들고 가는 병구를 잰 걸음으로 따라가 옆에 나란히 걷는 김피디.
카메라를 들고 따라가며 질문을 한다.
김피 형도 깜짝 놀랐다
병구 왜요?
김피 쓰레기도 다 버리고, 너 오늘 멋지네!
병구 쓰레기 처리는 제가 전문가예요, 몰랐죠?
카메라를 들고 계속 따라오는 김피디에게 병구가 한 마디 한다.
병구 어디까지 쫓아오게요?
김피 버리는 것 까지?
병구 안돼요, 민망하게 왜 이래요, 이거 모자이크 되는 거죠?
안하던 일을 하려니까 저도 민망한 모양이다. 더군다나 이런 모습이 방송에 나온다고
생각하니 창피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음식물쓰레기봉지를 들고 걸어가는 병구를 김피디는 뒤에서 팔로우 하면서 계속 찍고 있다.
아파트 뒤편 쓰레기 수거장.
들고 온 음식물봉투를 던진다, 음식물봉토는 정확하게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집게손가락으로 쥔 비닐봉투를 수거함에 넣고 막대기로 꾹꾹, 그리고 발로 차서 쓰레기통을
닫는다. 익숙한 동작, 많이 해본 솜씨다.
‘그래도 너 대단하다’ 김피디의 칭찬에 어깨를 으슥하며 병구가 집으로 향하고 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병구. 흐뭇하게 쳐다보는 엄마가 보인다. 쇼파에 있던 아빠가 가족들이
들으라는 듯 외친다 “땡큐~” 병구가 멋쩍게 목례를 한다.
엄마가 아빠 옆에 앉아있는 병구에게 물어 본다
엄마 내일 뭐하고 노는데?
병구 내일 친구들하고 노래방 가려고요
엄마는 상담에서 배운 대화법이 생각났다, 잠시 생각하고 병구에게 말을 건넨다
엄마 병구야 말이란 게 힘을 가지고 있어,
‘저 노래방 갈 거예요. 근데 돈이 없네요, 그래서 걱정이네요’ 그렇게 얘기하면 ‘아 병구가
노래방 가는데 돈이 없구나’라고 생각하지 그러면 ‘돈을 줘야 되겠네’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이야
근데 ‘놀 건데 돈 줘요’ 그러면 주고 싶다가도 주기가 싫단 말이야, 아까 엄마한테
얘기한 것처럼 그렇게 얘기해봐.
엄마가 얘기하는 것은 ‘나의 마음을 전하는 아이(i)대화법’이다.
병구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한다
병구 저 내일 노래방 가기로 했는데 돈이 없네요, 걱정되는데 어떻게 해요?
엄마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엄마 응... 알겠어, 아빠한테 얘기해봐
모두가 하하하 웃고 만다. 당황스러운 병구가 아빠의 얼굴을 보고 있다.
병구 아빠 내일 노래방 가기로 했는데 돈이 없네요?
모두가 아빠의 반응을 궁금해 하며 시선이 아빠한테 몰린다
아빠 응, 알겠어 꼽사리 껴라~
다시 한 번 웃음바다가 된다. 난처한 병구를 위해 그래도 엄마가 나선다.
엄마 요즘 꼽사리도 잘 안껴줘~
콧노래 부르며 일어서는 아빠, 안방에서 가서 지갑을 가져와 병구에게 돈을 건넨다
아빠 너무 늦게 까지 놀지 말고,
병구 네~
아빠 다음에는 우리 가족이랑 가는 거다. 알겠지?
갑작스런 아빠의 제안에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병구
병구 정말요? 좋아요!
가족들 환호하고 맞은편에 있던 엄마가 엄지척을 들어 보인다.
남편도 손을 모아 하트표시를 엄마에게 보낸다.
#부부 사이 걸림돌
대학로 연구실에서 마지막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가족상담을 한지도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오늘이 마지막 상담이다. 김교수가 가족을 한명 씩 둘러보고 말을 건넨다.
김교수 제가 오늘 마무리하는 쪽으로 하려고 하는데요
마무리가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 모두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병구도 이젠 기다리는 날이었는데..
‘부부는 가족을 유지하는데 든든한 반석’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김교수가 상담을 이어나간다.
김교수 이 부부가 서로 좋아하는 부분에 있어서 걸림돌이 하나 있어요.
그게 무엇일가요?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각자 하나씩 말해보라고 한다,
엄마는 ‘아빠의 술 문제’라고 대답했고, 아빠는 말없이 병구의 등을 쓰다듬는다.
병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 아빠를 바라본다. 엄마가 먼저 말을 한다.
엄마 가장이 술로 인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자꾸 보여주고, 그거로 인해 자꾸
실망하다 보니까, 똑바로 된 부부 관계나 대화를 할 수 없어요
김교수 좋아요. 그 다음에는 아버님! 병구가 왜 걸림돌이 되었죠?
아빠 항상 뭐 사고치고 문제만 ,,,
김교수는 두 부부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김교수 두 분 다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 부부. 김교수가 병구에게 물어본다
김교수 병구야, 엄마 아빠가 서로 신뢰하고 존경하고 좋아하는 데
걸림돌이 있는데 그게 뭘까?
병구 이해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김교수 응. 누가 누구를? 서로?
병구 네
병구의 대답에 일리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김교수가 답을 제시한다
김교수 부부가 서로 좋아하는 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있다면
부부가 배우자보다 더 좋아하는 게 있을 때에요,
각자 배우자보다 더 좋아하는 게 있을 때 부부가
서로 좋아하는 것에 걸림돌이 됩니다.
김교수가 부부를 번갈아 본다, 엄마 아빠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김교수 좋습니다. 그럼 현재 남편은 나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거고요
그게 남편이 나를 좋아하는 데 있어서 방해물이 되고 걸림돌이 되는 거죠?
엄마 ....그렇죠
김교수는 이렇게 설명을 이어 나간다
아내가 남편을 좋아하는데 걸림돌은 술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물어본다.
‘술이 좋으세요? 아내가 좋은 세요? 남편은 당연히 아내가 좋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물어본다 ‘술 마시는 남편이 싫은 거죠?“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김교수 이런 걸 뭐라고 하냐면 조건부라고 해요, ‘조건부 사랑’
이라고 해요. 남편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나보다
술을 더 좋아한 다 그럼 맞아요 근데 ‘남편이 술을 마시니까
나는 싫다‘ 그러면 조건부인 거예. 병구가 사고를 치면 안 사랑스럽고,
조용하면 사랑스럽고, 그렇지는 않잖아요?
엄마 네..,
김교수 아들은 조건부가 아니잖아요. 애는 뭔가 말썽을 부려도 사랑 스럽죠?
병구는 조건부가 아닌데 남편은 조건부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내 마음의 문제인거에요. 내 마음의 문제..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를 바라보다 이번에는 김교수가 남편에게 물어본다.
김교수 아내가 나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병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남편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아빠 병구를 더 좋아하는 거겠죠.
김교수 그러면 부부가 서로 좋아하는 데 병구가 걸림돌이네요, 맞죠?
엄마는 김교수의 말에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가만히 듣고 있는 병구에게 물어본다
김교수 엄마가 아빠를 좋아하는 데 있어서 본인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병구 네~
김교수 왜 그렇다고 생각해?
병구 그냥 사고치고 저 때문에 싸울 수 있어서~
김교수 꼭 그렇진 않아. 사고 쳐도 예쁜 자식이 있어. 그것보다는 엄마가
아빠를 좋아하는 것보다 엄마가 너를 더 좋아하는 게 문제야. 왜냐하면
엄마랑 너는 부부는 아니잖아. 이 집의 부부는 누군데? 엄마 아빠야 그지?
김교수는 이렇게 설명을 이어 나간다
‘가족이라는 집에 든든한 부부가 반석이 되어야 한다’ 지난 상담에서 모두에게 설명한 것이다.
그런데 부부가 있어야 할 반석에 더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 그것은 아들 병구인 것이다.
아빠의 자리에 아들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하면 아빠의 자리가 위태로워진 상태고, 그래서 가족이 위험한 상태가 된 것이다.
김교수가 병구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보며 병구에게 물어본다
김교수 엄마가 아빠를 좋아하는 것보다, 너를 더 좋아하신 단다.
어떻게 하지?
병구가 말없이 엄마를 쳐다본다. 당황스러운 엄마도 병구를 쳐다본다.
김교수 모르겠지. 이게 중요한 거다.
너의 결정이 중요하단다. 엄마가 아빠보다 너를 더 좋아하는데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병구 ... 성인이 되어서 집을 나와야죠
김교수 (웃음) 그래. 성인이 되면 독립하는 건 꼭 필요하단다.
근데 지금은 어떻게 할래 지금은.
병구 ...
김교수는 상황을 다시 정리하며 부부를 이해시키려고 노력중이다.
이 가족을 바로 세우려면 부부가 서로 좋아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보다 아들
을 더 좋아한다, 병구가 말썽을 피운다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 말썽을 피우든 안 피우든 엄마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럼 부부가 좋아하는데
걸림돌은 아들이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김교수가 다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 문제는 부부가 이해를 해야 만 한다.
김교수 예를 들어보자. 네가 다시 한 번 오토바이에 손을 댔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해봐. 아빠는 뭐라고 하실 것 같아?
잠시 아빠의 얼굴을 보고 병구가 대답한다
병구 나가라 하시겠지죠
김교수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뭐라고 하실까?
병구 ... 같이 나가자고!
김교수 그러겠지! 둘이 집을 나가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병구의 머리가 복잡 해 진다. 지금 병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교수 그럼 상황을 이해했지? 이 집에서 둘 다 나가면 가족이 없어지는 거야 알겠지?
그럼 엄마한테 뭐라고 말할래?
병구 아빠를 더 좋아하라고~
엄마와 아빠의 표정을 살피는 병구에게 김교수가 다시 질문한다
김교수 정말로 그렇게 말하고 싶니?
병구 아니요...
김교수 그러면? 아빠보다 널 더 좋아했으면 좋겠어?
병구 아니요 그냥 우린...
가족들. 모두 웃음이 나온다
김교수 멘붕이 오죠 이젠. (웃음) 멘붕이 와요.
부부는 진지하게 병구의 대답을 경청하고 있었다. 명쾌하게 유도하는 김교수,
진지하게 듣고 있는 아내와 남편, 문제해결의 요지를 파악하기 시작하는 병구.
그리고 마침내 부부는 알게 되었다.
가족이 단단하게 서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서로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병구도 ‘엄마가 아빠를 더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다시 ‘병구를 이해 시켜서야 한다’는 생각에 김교수가 병구에게 집중하여 질문한다.
김교수 병구하고 조금 더 얘기하고 다른 분들하고 얘기 할게요.
내가 말썽을 부리면 아빠는 혼내고 엄마는 감싸지? 그렇지.우리집에도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있어, 근데 우리 집은 안 그래. 나와 아내가 함께 혼내거든!
그렇구나 “부부의 공동대응” 이것을 병구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김교수 너는 둘 중의 한 명이 너를 감싸는 게 좋을 거 같아, 둘 다 혼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잠시 생각하던 병구가 대답한다.
병구 둘 다 혼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김교수 정말 그렇게 생각해? 왜?
병구 그럼, 엄마 아빠가 안 싸우니까요.
병구는 ‘자신이 혼나는 것보다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야지 서로 좋아지게 된다고 생각했다.
김교수 둘 다 너를 혼내도 괜찮겠어?
병구 네
엄마가 가만히 병구의 손을 잡아준다, 아빠도 따뜻한 시선으로 병구를 바라보고 있다.
김교수 아직 어린 너한테 이런 걸 물어보는 것이 나도 마음이 안타깝고, 애처롭단다.
근데 이것이 너한테 정말 중요하니까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네가 말썽을 부리면
엄마 아빠가 둘 다 너를 혼내야 된단다.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
아빠도 너를 혼내고 엄마도 너를 혼내고 하면 부부 사이는 어떻게 될 거 같아?
병구 좋아질 거 같아요.
김교수가 병구에게 한 마디 덧붙인다.
“부부사이가 좋아지면, 가족들 사이가 좋아지고, 그러면 엄마 아빠가 마음을 맞춰서
병구에게 더 잘 보살펴 줄 수 있거든“
이제 병구는 엄마 아빠가 함께 혼내도 좋다. 대신 두 사람이 싸우지는 않을 테니까.
마지막 상담은 다음문제를 향해 바삐 달려가고 있다.
다음은 어떤 문제를 또 명쾌하게 풀어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