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피디의 제작노트 Oct 24. 2021

아빠의 아들로..

마지막 숙제

#아들의 트라우마


가족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남은 퍼즐을 맞추고 있는 김교수. 병구는 잠시 나가있어 달라고 요청한다.

김교수를 사이에 두고 부부가 마주 앉았다. 진지하게 말을 꺼내는 김교수.


       김교수   아들이 이집에 들어와서 같이 산지 5년이 됐잖아요

                5년 동안 없어지는 않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요, 불안감, 공포 같은 것,,,

                우리가 흔히 트라우마라고 하죠. 병구의 트라우마가 뭔지 아세요?

       엄마     ?    

       아빠     ?

엄마 아빠는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다, 다시 한 번 김교수가 부부를 바라보면서 얘기한다.

       김교수    그것은 ‘또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예요


엄마는 서서히 고개를 숙인다. ‘그런 상처와 두려움을 아직도 갖고 살았다‘는 게 

엄마에게는 충격이었다.

왜 그걸 알지 못했을까? 내가 낳은 자식인데.. 엄마는 고개를 숙이며 울기 시작한다. 

남편은 슬그머니 아내의 손을 잡아준다.

어린 시절부터 남의 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병구.이 집도 언젠가는 가야할 집, 

쫒겨날 집이라고 생각했다.

또 언젠가는 ‘버림받는 삶’을 반복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교수   아들은 그래서 집보다는 친구를 찾아 나섰던 거예요 

                친구는 버리지 않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선택할 수 있잖아요, 


두 부부는 병구가 왜 그토록 친구에 집착하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자신 같은 삶이 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아들이 또 엄마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김교수가 엄마의 표정을 읽고 다시 말을 꺼낸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잖아요. 엄마와 아들의 삶이 반복 되고 있어요.”

새엄마를 통해 살아가는 과정에 끔찍한 학대경험을 겪었잖아요? 이미 버려진 경험에다가 

학대를 받은 경험인 경우는 참을 수 없는 어떤 분노가 있거나, 고통이 있을 건데 

그걸 견디기엔 아들은 너무 어려요, 

‘버려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병구는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됐던 거죠“


잠시 멈추고 다시 마무리를 하는 김교수

“앞으로 아들이 여기가 내 집이고, 내 가족이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해주세요

 서로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은 없어지고 믿음이 생길 거예요“

 같이 노력하도록 해 주세요?


엄마 아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병구의 가장 큰 속내를 알게 된 부부는 많은 부분에서 병구를 배려 할 것이다.


#아빠와 아들의 마지막 숙제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를 하고 있는 김교수.

김교수의 요청으로 엄마가 상담실을 잠시 비운다. 긴 테이블에는 아빠와 병구 앉아 있다, 

분위기는 다소 진중해 진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김교수가 말을 꺼낸다. 

    김교수  두사람하고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냐 하면.. 

              지금까지 같이 살면서.. 같이 산 게 얼마정도 되지?

병구에게 먼저 질문을 한다

    병구    5년이요

    김교수  5년 동안 같이 살면서 내가 웬만한 거는 내가 잘못한 건 아는데

              이거 하나는 진짜 잘못했다, 그게 뭔지 한번 이야기해줄래?

잠시 생각하는 병구가 답한다

    병구     아빠한테 대든 거?

    김교수  조금 자세히 얘기해 줄래? 진짜 잘못하고 후회하는 것?


병구가 한 참을 망설이고 있다. 아빠의 얼굴에는 약간 긴장하는 표정이 보인다

      병구     저번에 칼 들었던 거.

 작년에 아빠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때, 병구는 아빠에게 칼을 들고 덤볐고, 

아빠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맞섰다. 그때 엄마는 칼을 손으로 잡으며 두 사람을 막고 있었다.

그 사건은 두 사람에게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김교수  그래 앞으로 잘할 거라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단다. 

              그런데 옛날에 못했던 것도 깔끔하게 사과를 하고 넘어갈 필요는 있거든?

병구가  아빠에게 어렵게 말을 꺼낸다

     병구     아빠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눈을 지그시 감는 아빠.

병구 입에서 나오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김교수가 이어서 아빠에게 질문한다

     김교수     그럼 병구의 용서를 받아 주시는 거죠?

     아빠        네~

     김교수    그럼 아빠 얘기를 들어보자. 아버지로서 지난 5년 동안 다른 거는 다 

                 괜찮게 했는데, 이거 하나만은 진짜 잘못했다 그게 뭐가 있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빠가 병구를 보며 이야기 한다.

     아빠      너 처음 왔을 적에, 진짜 꼴 보기 싫었어. 

                 무슨 말을 하면 말귀도 못 알아듣고, 그래서 안혼내도 될 것을 더 혼내고,

                 조카들 앞에서 윗몸 일으키기 4백번 시키고, 스케이트장에도 너 만 빼놓고..

                 미안하다!  내가 너무 심했던 거 같아, 사과할게 미안해!

병구의 눈에서 눈물이 맺힌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병구.

     김교수    그럼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 해 줄래?

                 대답을 하고 가면 마음이 더 편해질 거야

     병구       네... 괜찮아요 아빠!


조금 더 침묵이 흐르고, 김교수도 병구도 아빠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아빠      그래. 네가 작년부터, 그날 사건 이후에 

                ‘이제 너에 대한 관심을 꺼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 

                그 뒤로도 몇 번 또 칼 찾으려고 하는 거 봤거든, 또 덤빌까봐, 

                칼 들고 또 덤빌까봐... 

더 이상 아빠는 말을 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잊혀 지지 않는 큰 상처가 있다. 하지만 이 상처를 드러내고 도려내지 않으면 

항상 아픔이 되어 남아 있다. 병구와 아빠는 오늘 그 상처를 도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들과 아빠는 어려운 수술을 끝내고 회복될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     다음부터 그러지 말자. 

      병구     네~ 아빠 !

아빠가 병구에게 다가가 가만히 안아준다.

김교수가 정리 멘트를 한다.

“묻어 둬서 썩어 버리는 것보다 도려내서 새살을 돋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서로 마음이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마음을 털어 놓고, 정면승부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신뢰가 생기니까요. 그 신뢰는 믿음이 되고 서로 가까워 질수 있는 씨앗이 될 거예요“

병구와 아빠의 가장 큰 상처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 마주보는 가족


다시 상담실에 모두 모인 가족. 세 사람은 마주보며 원을 그리고 있다.

원 밖에는 김교수가 자리 잡고 있다.

 "두 달 전에 저랑 만났을 때 기억나세요? 처음에 이 방에서 만났을 때요. 

  제가 이렇게 어깨를 두르는 거랑, 등을 맞대는 거랑 어느 게 더 익숙하고 

  편안한지 이야기 나눠보자고 그랬죠. 기억나시죠?"

 가족들은 서로 등을 마주하고 선다, 그리고 느낌을 이야기 한다. 처음 상담을 했을 때 

 가족들은 어색하고 불편해서 어쩔 줄 몰랐다. 지금은 서로의 등이 편해졌다. 그리고 서로 기대기도 한다.


“ 이번에는 앞으로 보고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 ..”

  어깨동무를 하고 둥글게 둘러싼 가족들에게 김교수가 질문을 한다

       김교수    처음 왔을 때랑 지금 이랑 느낌이 어떠세요? 아빠부터..

       아빠       이렇게 가족이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교수    그 다음에 엄마도 얘기해 보세요

       엄마       듬직해요~ 모두 다

       병구       전에 보다 편해진 거 같아요

뒤로 등을 진 상태와 앞으로 어깨동무 한 상태,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이 더 편할까?

김교수의 질문에 모두 대답한다. “마주보는 것이 편해요“ 

서로 어깨를 감싸고 있는 가족들에게 김교수가 마지막 당부를 한다.

    “ 이 정도 까지 할거 예요. 등을 대고 서는 것 보다는 서로 어깨를 감싸 안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으니까, 앞으로는 더 가깝게 끌어안는 것이 더 좋고 편안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시겠죠? 

     서로 끌어안으며 가족 간의 거리가 좁아지고 더 단단해 질 거예요“


이렇게 마지막 상담이 끝이 났다. 조연출이 슬레이트를 치며 외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 아빠의 아들로


안양의 범계역 2번 출구에 병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전화를 건다.

     “아빠 어디에요? 저 범계역이예요, 네네”

핸드폰에서 아빠의 음성이 들린다.

      “동사무소 들렀다가 갈게!"

      “조심히 오세요”

“조심히 오세요” 한 달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말이다.

병구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궁금한 김피디가 물어본다.

“오늘 여기서 아빠 만나기로 약속했어?”

“네”

“병구야 무슨 좋은 일 있어?‘


병구는 김피디의 말에 대답대신 손에 쥔 종이를 보여준다, 

“저 고등학교 합격했어요~봐봐요”

병구가 자랑스럽게 고등학교 합격증을 내민다, 그렇게 진학문제로 갈등을 겪더니,

엄마의 바람대로 산본에 있는 고등학교를 합격했다. 

그때 아빠가 병구에게 약속한 것이 있는데? 휴대폰 이다. 아빠가 병구에게 휴대폰을 

사주러 오는 것이다. 아빠를 기다리는 병구에게 김피디가 연출을 부탁을 한다.


“병구야, 아빠 오면 손 한번 흔들어줘, 아빠하고 한번 부르던지,

 부끄러우면 손 만 흔들어도 돼!“

김피디는 에필로그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병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은편 건널목에서 아빠가 병구를 보고 있다, 

서슴없이 손을 흔드는 병구, 아빠도 손을 흔들어준다.

    아빠   많이 기다렸지

    병구   아니 예요~ 아빠 ! 이거!

고등학교 합격증을 내미는 병구. 찬찬히 살펴보는 아빠.

    “합격증.  박병구”

아빠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머문다.


핸드폰 매장으로 들어가는 아빠와 병구. 

병구가 이리저리 매장을 돌아다니며 핸드폰을 만져 보고 있다. 원하는 핸드폰을 

사고 싶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 망설이는 병구에게 다가오는 아빠.

      병구    기능은 이게 더 좋은데..저는 이거 할래요.

병구는 ‘저렴한 것을 사기로 한  아빠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아빠    그런데 너는 이거하고 싶다고?

      병구    아니..둘 중에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어요. 

병구가 사고 싶은 것이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병구를 지켜보던 아빠가 말을 건넨다.

     아빠    병구야, 이번에 한 번 더 믿어볼게. 자 이걸로 해!

     병구    네?,,, 감사합니다!


병구가 얼른 고개를 숙이며 아빠에게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부자지간에 결론이 났다’는 것을 눈치 챈 주인이 병구를 부른다.

    주인    예, 조회해 보면 나오죠. 아들! 잠깐 이리로 와볼래? 정했니?

    병구    네 ~ 이걸로 할 거예요.

가게 집 주인이 컴퓨터를 두드리며 조회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아빠와 병구의 이름을 

물어본다.

    주인   이름이 박병구!

    병구   네~

    아빠    이번에는 36개월 이야, 위약금 물을 일 없겠지?

    병구   네~

컴퓨터로 자료를 검색하던 주인이 아빠에게 물어본다. 

병구도 주인아저씨에게 고개를 돌린다.

      주인    이거 명의등록 전에는 엄마 걸로 돼 있었나 봐요?

      아빠    네 맞아요

      주인   지금은 아빠명의로 하는 거죠? 그러면 ,, 박,,,

한참을 검색하던 주인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 아빠에게 물어본다.

주인 등본에 아들이 올라와 있나요?

병구가 나서서 먼저 얘기한다.

       병구    네 올라와있어요.

아빠가 미리 가져온 새 주민등본을 꺼내 보인다. 주인이 받아들고 소리 내며 확인한다.

        주인    아빠 “한석구!” 아들 “한병구!” 네 맞네요, 

                  여기 ‘한병구’라고 돼 있네요.

“한병구” 병구의 성이 바뀌었다. 박씨에서 한씨로, 아빠와 같은 성이 되었다.

병구가 놀라며 아빠의 손에서 주민등본을 가져다가 찬찬히 쳐다본다.


“한석구. 박혜경. 한병구. 한우람. 한해미” 이렇게 다섯 가족이 보인다. 병구의 

이름도 보인다. “한병구!” 아빠와 등본을 번갈아 쳐다보는 병구.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빠 고마워요” 

아빠가 병구를 손을 잡으며 대답한다. “병구야 그 동안 미안했다.”

“감사합니다 ~ 앞으로 잘 할게요!”


3개월 동안 솔루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화성가족은 이렇게 엔딩이 되었다.

이제 병구는 집에 가면 엄마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리며 아빠에게

고마워 할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엄마도 모른 척 놀라며 ‘아빠에게 감사의 표현을 듬뿍 할 것이다“

이제 병구도 아빠의 아들로 당당하게 살아 갈 것이다. 


김피디는 이런 에필로그를 생각하며 여의도로 돌아가고 있다.   

이전 20화 가족의 성립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