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뼈 맞아서 소개하는 기사
기사 속 필자는 20살 언저리 대학생에게 전하는 말을 했을 뿐인데, 내년이면 슴후반이 되는 내가 괜히 찔렸다.
"스무 살이 냉소적인 이유는 냉담함을 가장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 하면,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우리 모두가 그랬다."
이상하다. 나는 이제 스무살 후반인데 아직도 위와 같은 이유로 냉소적이며,
"세상에 대해서 아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아는 체를 하며 기를 쓰고 자신을 지켜야만 했을 것이다. 원칙을 세워야 해, 성을 쌓아 올려야 해.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을. 안 그러면 휩쓸리기 십상이니까. 안 그러면 잡아먹힐지도 모르니까.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세상은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닥쳐왔고, 그 무수하고 다채로운 자극 속에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리는 중이다. 스무 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세상이 미생을 계속해서 탄생시키는 탓일까. 몇 년 전 드라마 '미생'을 볼 때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이자, 취준생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는데 변한 건 없다. 더는 여린 청춘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여전히 미생이라 괴롭고 아늑하다.
"마흔이 넘으니 어떤 기분이 드느냐 하면, 대체로 즐거운 기분이다."
청춘을 넘겨 마흔이 된 필자는 대체로 즐거운 기분이라 한다. 부럽다. 전 마흔이 되려면 멀었어요. 그렇다고 또 당장 마흔을 넘기고 싶은 건 아닌데.
"왜냐하면 그 시기는 원래 그런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정쩡하고 괴롭고 갑갑하고 엉망진창인 그 시기는 원래 괴로워하면서 넘기는 것 말고는 딱히 답이 없기 때문이다. 괴로워야 할 때 충분히 괴로워하지 않는 것도 인생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 있으리라고는, 멀쩡히 살아서 자식까지 둘이나 낳고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스무 살도 아니면서 기사를 읽은 슴 일곱은 이렇게 생각했다. '일단 충분히 괴로워하며 넘겨보겠노라.' 요즘은 내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젠 그만 쌓고 싶은데 너무 오래 쌓아와 그만 쌓을 방법을 모른다. 게다가 여전히 세상은 갑작스럽고 여전히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여전히. 어렵다. 아, 하지만 살아가야 하니까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일단 충분히 괴로워하며 넘겨보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