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나-3
소록소록 잠든 아기 업고
집으로 가는 길
대숲에는 여우가 산다네
대숲에는 여우가 산다네
"할멈, 어디를 그리 바삐 가나.
갈 거면 등에 업힌 아기는 내려놓고 가지."
"등? 등에 뭐가 있다고 그려."
"까만 머리가 보이는데 아기 머리 아닌가?"
할머니가 비녀를 뽑자
뭉툭한 머리올이 떨어져
아기를 가려버렸네
"이건 내 머리여."
여우는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할멈, 그러지 말고 나랑 조금 놀다 가면 안 되나.
내가 심심해서 그래."
"뭐를 하고 놀까?"
"노래나 불러주지."
"노래?"
"그래."
"그럴까?"
화공을 불러라
화공을 불러
토끼 화상을 그린다
오징어 먹물 듬뿍 찍어 토끼 화상을 그린다
폴짝 뛰다 두리번 동그란 눈 그리고
더듬더듬 킁킁 냄새 맡던 코 그리고
오물오물 외물외물 풀 뜯던 입 그리고
소쩍새 짖어 울 때 쫑긋하던 귀 그리고
들판 언덕 너른 바위 팔팔 뛰던 발 그리니
두 귀는 쫑긋 눈은 도리도리
허리는 늘씬 꽁지는 몽특
그림 속 토끼를 얼핏 보니 더할 것이 없구나
아나 옜다 거북아
니가 가지고 나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