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시루와 같은 지하철을 탔다.
나는 잠시 전지적 작가가 되어 승객을 관찰했다.
다들 콩나물처럼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무엇에 홀린 듯 유튜브나 게임을 보거나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낸 데 열심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애쓰나, 인간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악마들이 아니다.
옛날부터 그들은 우리를 나락으로 끌고 가기 위해 도박, 마약, 야동 등 다양한 도구를 발명했다.
그들의 바람과 달리 사피엔스는 쾌락에 금방 적응했다.
우두머리에게 혼난 악마 사원들은 머리에 뿔이 나도록 다른 방법을 연구했다.
개개인을 타락시키는 비효율적 방법이 아닌 주렁주렁 달린 고구마처럼 단체로 영혼을 황폐화하는 제품을 발명했다.
그 기기의 성능에 반신반의했던 사탄들도 출시와 동시에 히트를 치자, 매우 놀랐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개인을 찾아가 탈선시킬 필요 없이 이것만 던져주면 무더기로 영혼을 받치기 때문이다.
시력검사표 보듯 온종일 그 기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발짐승을 보면 절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왜 스마트폰은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도구일까.
하나는 어색함을 깨는 포털임.
전동차 안에는 당신이 아는 이가 없고, 그렇다고 모르는 이와 함부로 말을 붙일 수 없다.
어색함이 흐르는 공간에서 그 기계를 켜면 인간은 게임이나 유튜브처럼 오래 사용해서 익숙한 환상의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사탕임.
칼춤 추는 무당 옆에 있으면 기를 빨리듯 낯선 공간은 묘하게 끌어당겨 마음이 허전하다.
빈속을 달래주는 사탕은 항상 주머니에 휴대할 수 없고,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아 입에 달고 살자니 몸에 죄짓는 기분이다.
이때 그 기계는 설탕 덩어리보다 간편하게 공허를 달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정욕구를 부채질함.
대중교통에서 이동하는 동안에도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기 마련이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타인을 보면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며 초조함을 달래고 싶다.
무언가를 찾아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투명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도록 마귀에게 눈도장을 받는다.
눈은 영혼이 다니는 통로이다.
인간의 욕심은 대개 눈에서 시작되므로, 악마는 두발짐승을 유혹할 때 눈길부터 사로잡는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스마트폰으로 볼수록 디지털 마약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시선을 빼앗기면 자유를 잃는다.
당신 안의 자유를 누릴 시간을 벌려면 되도록 악마의 발명품을 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