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단근 Jul 29. 2024

사람을 오래 좋아하려면 쿠션이 필요해

“이봐! 이 일 오늘까지 해”

옆의 과의 사무관이 내게 명령조로 말했다.

‘말을 놓을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자, “반말하지 말고 ○○○ 주무관으로 부르세요”라면서 되받아쳤다.

평소 볼펜 떨어지는 소리에도 민감한 사무실에서 떨리는 내 목소리를 들리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내 책상으로 쏟아졌다.

“무슨 일이야!”라면서 다들 수군거리기 바쁘다.

그와 나는 고슴도치들처럼 서로 가시를 부딪쳤을까.

그 직원은 나와 밥을 서너 차례 먹은 적이 있기에 친분이 형성되었다고 판단하여 편하게 이야기했다.

반면 나는 밥을 몇 번 먹었다고 반말할 사이가 아니라고 여겼다.

     

관계가 따끈따끈해질 때까지 인간마다 속도가 다르다.

서서히 오르는 이가 있고, 확 달아오르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비슷하게 올라가면 좋으나, 온도 차가 발생하면 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

흔히 술자리에서 친해지려고 말부터 놓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이가 먼저 반말하자고 쉽게 내뱉는다.

반말은 그때는 편할지 모르나, 말랑한 혀는 통제할 수 없다.

타는 말은 재갈을 물릴 수 있으나, 입으로 나온 것은 한 번 뱉으면 다시 지퍼를 채울 수 없다. 

직책이 낮거나 젊으면 시간이 갈수록 상대방에게 휘둘리고 일이 잘못되면 말하기가 껄끄러워진다.

     

좋은 사람은 말 하나에도 바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마주치는 이의 성명을 기억하고 인사를 할 때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상대방은 그에게 존중을 표했다.

    

직장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업무로 뭉친 회사에서 식구처럼 지내면 좋겠으나, 현실은 다르다.

가족은 다른 이의 허물을 덮고 그 책임마저 짊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은 이익을 공유할 수 있으나, 이유 없이 손해는 떠맡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상처는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서로의 만남이 많아질수록 마음을 베고 찌르는 문장을 조심해야 한다.

처음에는 서로의 일상으로 시작하나, 소재가 고갈되기 시작하면, 세상 흐름에 따라 돈과 자식, 집을 자랑한다.

“주식 투자해서 얼마 벌었어, 우리 애는 서울대에 들어갔어, 이번에 아파트 평수를 늘렸어”라는 주제로 상대방을 열등한 위치에 놓는다.

그런 말은 균열을 만들고, 어느새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숨은 욕심은 언젠가 드러나고, 자랑거리는 언젠가 덧나기 마련이다.

속에 가득 찬 생각이 결국 입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끊고 ‘나 혼자 살래’의 정신으로는 직장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정하 시인의 〈고슴도치 사랑〉처럼 서로를 알아갈수록 부딪치지 않는 쿠션이 필요하다.

‘멀지도 않고,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도 않을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사람을 오래 좋아하려면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이전 11화 인사의 무게가 다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