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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Aug 05. 2024

튀는 놈, 잘난 놈, 모난 놈 다 보냈다

근면과 성실은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단골 메뉴이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에서 가진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었다.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원재료를 수입해 공장을 돌렸다.

공장은 개성보다 대량 생산을 위해 인간마저 틀 속에 넣기를 원했다. 

사람이 넘쳐나는 시절,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라면서 경영자가 배짱을 부려도 참아야만 했다.

가족에게 자장면이라도 사주겠다는 가장의 무게에 짓눌려 머신의 머슴이 되어도, 군말하지 않고 몸과 영혼을 기계에 갈아 넣었다.

인간 부품은 쉽게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사망을 뜻하는 튀는 행동을 미친 짓으로 보였다. 

그 결과 다른 시도를 하지 않았다.

“뭘 바꾸려고 해. 하던 대로 해”처럼 변화는 금기어가 되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당이다.

그는 행인을 붙잡아 침상에 누인 다음 키가 침대보다 크면 팔다리를 잘라내고, 키가 작으면 억지로 늘려 죽였다.

그것처럼 미친 속도와 대량생산에 몰두한 한국 사회는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뚝딱뚝딱 물건을 찍어내듯 국민을 사각 틀에 가두고, 사각지대를 벗어나면 이단아로 찍어냈다.

한술 더 떠 공권력은 불량 인간을 손봤다.

관공서는 머리와 치마 길이까지 검열의 잣대를 들이댔다.

한 마디로 튀는 놈은 톱질하고, 잘난 놈은 망치질하고, 모난 놈은 다 보냈다.

성실의 시대는 가고 이제 개성의 시대가 왔다.

그런데도 늘 하던 것에 익숙했던 근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사람 하나가 소중한 시대에 “그놈이 그놈이야”라는 구시대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자율성에 대해 저항하는 이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다들 똑같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도 멈출 수가 없다.

둥글둥글한 이, 뾰족한 사람도 있어야 사회는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는다.

네모난 침대, 네모난 풍경, 온통 네모난 세상.

네모의 꿈이 사라지지 않을수록 다들 날카로워져, 모진 말을 던지는 모진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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