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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Aug 08. 2024

머니(Money)만이 내 세상

어머니가 한 잔 드시면, 늘 하던 이야기가 있었다.

형과 누나는 육성회비를 못 내면 다음에 달라고 했지만, 나는 줄 때까지 학교에 안 간다고 떼를 썼다고 했다.

그 회비란 학부모가 학교 운영과 선생님의 복지를 위해 자율적으로 내는 돈이다.

말이 협찬이지 안 내면 회초리로 벌주거나 망신을 주었다.

좋아하는 여학생도 있었는데 교탁 앞에서 창피를 당했던 나는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랐다.

무심한 선생님은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에 등급 도장을 찍듯 어린 가슴에 빨간 줄을 그었다.

그렇게 받은 쌈짓돈은 누군가의 주머니에 순대 속처럼 쑤셔 넣고, 쏠쏠하게 사용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설문 조사를 발표했다.

각국은 가족이나 직업을 내세웠으나, 한국은 물질적 풍요를 1위로 뽑았다.

2순위마저도 돈을 벌기 위한 건강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의 꿈도 건물주일까.

흔히 서양은 개인주의이고 동양은 집단주의 성향이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주의인 서양은 가정을 중시하고, 우리끼리 잘 뭉치는 한국식 집단주의는 돈이 최우선 목표이다.

      

왜 머니만이 전부일까?

일제 강점기, 6·25 전쟁, IMF를 거치면서 터전은 잿더미가 되었다. 

왕조가 망해 독립운동가는 구차하게 살아도 외세에 빌붙은 세력은 부귀영화를 누렸고, 그 후손은 기득권으로 숨었다.

가진 이는 사회적 약자를 함부로 대하고, 공통된 약속인 법과 도덕은 돈에 따라 제멋대로 적용했다. 

가진 자에게는 부드러운 줄자가 되었다.

극빈한 이에겐 1mm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잣대를 들이대니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한으로 맺혔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금전은 어느새 인격이 되었다.

교양, 지식, 공감, 감수성, 취향 등 품격은 화폐에 묻혀 버렸다.

경제력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죽음 앞에는 무기력하다.

     

죽은 자의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

이것은 다른 세계로 갈 때는 모두 비우라는 의미이다.

금수저나 은수저나 흙수저 모두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누구도 흙무덤으로 들어가는 날짜를 모른다.

아침에 집을 나서다가도 저녁에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가진 게 적다고 불평하지 말자.

 

지나고 보니 빈곤은 나를 건강하게 만들었다.

쌀이 부족해 보리밥에다 조, 수수, 콩 등을 먹었고, 김치 반찬을 들키기 싫어 뚜껑을 덮고 점심을 먹었다.

그 김치는 민들레, 씀바귀 등으로 만든 보약 반찬이었다.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가 세계 행복지수 1위가 된 이유는 일명 휘게라고 불리는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휘게란 가족과 친구들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돕는 생활 철학이다.

누가 돈을 많이 버는지, 무슨 직업인지 등과 같은 외적 조건을 일절 말하지 않는다.

그저 소박한 일상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즐기는 것이다.

     

금전이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나, 가족과 사랑, 시간과 건강, 나눔과 배려 등 진정한 가치는 물질로 환산되지 않는다.

돈을 올려놓고 누군가를 저울질하기보다 고장 난 저울처럼 알아도 속아주고, 너그러워지고 싶다.

너무 가난하면 주눅이 들고, 너무 돈이 많으면 교만해진다. 

남은 생애, 돈의 노예가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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