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허명을 남기고 싶을까?
주말에 충청도 관찰사가 근무했던 공주 공산성에 놀러 갔다.
지그재그로 성문을 올라가는 길에 오래된 비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비를 해석하니 지방 관리들의 선정을 칭송하는 송덕비였다.
백성의 고단함을 기억하는 수령이었다면 기념비를 세우는 것도 이임식도 없이 조용히 떠났을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선무공신은 이순신 등 18명이고,
임금의 가마를 구한 호성공신은 내시 등 86명이다.
김덕령과 같은 의병장은 공신 칭호는 고사하고 목을 바쳤다.
세상은 이름표를 바꿀 뿐 달라지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에선 정책에 실패한 공무원은 용서받아도, 의전에 실패한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의전은 고도의 조율된 절차와 원칙을 세워서 국위 선양이나 애도할 목적으로 꼭 필요할 때가 있다.
문제는 지나친 이벤트이다.
의전은 여우와 사자를 위한 시간이다.
어느 조용한 숲에 동물 친구를 위한 축제가 열린다는 안내문은 나붙었다.
계산적인 여우는 사자를 높은 자리에 앉히느라고 분주하다.
동물의 왕은 자신의 위엄을 빛낸 여우가 사랑스럽다.
막상 제 돈 내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게 좋다며 넘어갔던 동물들은 그 둘의 꿍꿍이를 알 수 있다.
북유럽인은 2백만 원을 내고 더 큰 혜택을 누리므로 세금을 잘 낸다.
하지만 한국인은 백만 원을 내면 오십만 원의 혜택을 받으므로 조세에 민감하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 곳간에 들어갔다 나오면 뉴트리아는 생쥐로 변신했다.
자상한 백수의 왕이라면 거창한 향연보다 아픈 친구가 없는지 굶고 있는 이가 없는지 보살펴야 하지 않을까.
SNS에 염치가 바른 일용직 아저씨의 사연이 올라왔다.
“사흘 굶었어요. 국밥 한 그릇만 사주세요”
“너무 배가 고프고 또 살고 싶다. 염치없지만 계좌번호를 보냈다”라는 메시지를 게시했다.
간곡한 울림에 지상의 천사들은 사기를 당해도 좋다며 지갑을 열었다.
작은 이의 십시일반이 모여 세상의 온기를 전하는데, 요즘 그런 아름다운 문화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의 기부지수 조사에 따르면 기부하지 않는 이유의 1순위는 경제적 여유가 없음이고, 2순위는 기부단체의 불신이라고 발표했다.
경제 사정으로 기부금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은 수긍하나, 기브(give)를 받는 단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심각하다.
봉사 협회는 정성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행사 비용을 지출할 수 있고, 인건비와 임대료가 나갈 수 있다.
이때 가진 역량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되는데, 더 많은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빈곤 포르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감성마케팅을 한다.
‘챗지피티’를 만든 회사명은 ‘open ai’이다.
단어 그대로 그 기업은 투명한 세계를 열려는 의지를 표현했다.
나는 그런 세상이 빨리 오기를 소망할 것이다.
모든 과정이 공개되고 남을 의식하는 행사가 사라져,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