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는 인생의 낭비다.
박지성 선수를 지도했던 퍼거슨 감독이 한 말이다.
그는 왜 팀원이 트위터의 게시물을 올렸다고 비난했을까?
축구 선수가 누리꾼과 논쟁하거나, 호화로운 생활을 자랑하는 것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SNS 사용자들은 멋진 선물, 맛있는 음식, 눈부신 옷차림 등 누구나 혹하는 화면을 편집하여 자랑하기 바쁘다.
그들이 허세를 부리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픈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구독’과 ‘좋아요’라는 버튼으로 타자 승인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다른 이에게 인정받으려면 게시물을 올려야 하는데, 나다운 콘텐츠가 없어 물건과 장소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비싼 것을 뽐낼수록 잠시나마 바람든 무처럼 허한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
그러나 자랑질은 잠깐이고, 스스로 노예가 되는 길로 갈 수 있다.
팔로워는 변덕쟁이다.
그들은 당신의 사진이나 영상에 잠시 환호하나, 질리면 재미없다며 새로운 것을 찾는다.
매번 그들의 눈을 사로잡을 장면을 올려야 하기에 팔로우는 원하지 않는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어둠이 있다면 빛이 있듯이 SNS에도 좋은 점이 있다.
그것은 세상을 밝히는 투명한 창이다.
거울은 밝은 면만 비추지만, 유리는 어두운 측면도 조명한다.
위선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카리스마와 아우라 속으로 가식을 숨길 수 있다.
TV나 신문은 그들의 교만이나 무례를 비추지 않는다.
반면 온라인 소통망은 날 것 그대로 방송할 때가 많다.
솔직함을 무기로 한 방향으로 쏠린 시선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전환하게 만들 수 있다.
그 소통망은 본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겐 좋은 기회이다.
본래 방송은 촬영하고 편집하는 데 많은 돈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플랫폼을 활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아끼면서 세계관을 구축하고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창으로 이만큼 쏠쏠한 도구는 없다.
그 소통망은 온기를 퍼트리는 데 유용하다.
연탄 나르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면 우리나라 사람은 여건이 되면 서로 참여하려는 착한 성품을 가졌다.
연탄이 묻힌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 이 사회에 남아 있는 온기를 온기가 식지 않음에 마음이 따뜻해진 경험이 있다.
옐로카드 받더라도 조심하면 퇴장당하지 않듯이 SNS는 행복을 누군가에게 증명하려고만 들지 않으면 괜찮다.
다른 이에게 기억되는 존재로 남고 싶은 표현한 것은 자연스럽다.
옷을 입는 건 거울에게 알리고 싶고
비가 오는 건 창문에게 인정받고 싶고.
연탄재가 뜨거운 건 누군가에게 아랫목과 같은 기억되고픈 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