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을 타다, 부정을 만들다

다양한 부정을 나타내는 후치사 상당구

by 홍단근

먹을게 흔하지 않은 시절에 단백질 사냥꾼이었습니다. 들로 개울로 쏘다니면 꿩이랑 개구리랑 심지어 메뚜기도 단백질 공급원이라서 부지런히 잡아먹었습니다. 그래도 안 먹는 고기가 있었습니다. 노루고기입니다. “노루고기를 먹으면 삼 년이 재수가 없다.”라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부정을 탄다고 해서 다른 고기를 몰라도 마음이 꺼려하는 고기가 되었습니다. 소설 『토지』에서도 최치수 아버지가 개가 사냥한 노루고기를 먹고 부정을 타 죽었습니다. 부정 타는 노루고기처럼 일본어는 나이(ない)나 즈(ず)를 활용하여 부정의 후치사 상당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말을 깔때기처럼 걸러 쉬운 말을 써야 하는데도 불순물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럼 하나하나 익혀보시지요.

에 개의치 말고/않고, 에 관계없이, 에도 불구하고, 에 상관없이, 에 아랑곳없이, 은/는·을/를+개의치 않고, 둘째 치고, 막론하고, 별도로 하고, 불문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제쳐두고, 차지하고도, 의 구별 없이 따위


'에도 불구하고' 따위는 양보나 무관(無關)을 나타냅니다. 건만, 더라도, ㄹ 지라도, ㄹ지언정, 에도, 지만이나 아무튼(지), 어쨌든(지), 여하튼(지), 하여튼(지) 따위로 고칩니다. “지위가 높음을 개의치 말고 처벌해라.”는 “지위를 묻지 말고 처벌하라.”라고 다듬습니다. “상황이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하는 사람은 많다.”는 “상황이 개선되고 있지만 이탈하는 사람은 많다.”라고 표면을 사포질을 합니다.

에 의하지 아니하다

'에 의하다'를 부정하면 에 의하지 아니하다가 됩니다. 이때는 이/가 아니다, 말고 따위로 표면을 다듬습니다. 헌법 12조 1항의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는 “누구든지 법률이 아니면 ….”라고 간단하게 분칠을 합니다.

에 다름 아니다, 에 다름없다, (임)에 틀림없다, 와/과, 다름 아니다, 와/과 다름없다, 이나 다름 아니다, 이나 다름없다


관공서에 서류를 제출할 때 ‘사실과 상위(相違) 없음'이라고 하고 심지어 명판 도장까지 새깁니다. 상위 없다, 다름없다, 틀림없다는 동격을 표시하는 일본어 니소이나이(に相違ない) 따위를 직역한 말입니다. "사실이다, 사실이 맞다."라고 하면 되는 데도 아직도 일본산 불량품을 그대로 씁니다. 이런 말은 (꼭, 바로, 분명히, 확실히)+이다 따위로 표면을 벗깁니다. 또한 '에 해당하다'와 비슷한 뜻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에 다름없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하다” 모두 “민주주의를 위반하는 행위이다.”라고 연마제로 문지릅니다.

에 못지 아니하다

에 못지 아니하다는 만큼, 만치 따위로 그라인더질을 합니다. “결과에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라고 광택제를 발라줍니다.

에 불과하다, 에 지나지 않는다

'에 불과하다, 에 지나지 않는다' 따위는 뿐, 만 따위로 고치거나 ‘겨우, 고작, 기껏해야+이다’ 따위로 손봅니다. “올림픽 출전 당시에 18세에 불과하다.”는 “올림픽 출전을 할 때 고작 18세이다.”라고 다른 재료로 바꾸고, “태양은 아침에 떠오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곧 “태양은 아침에 떠오는 별일뿐이다.”가 됩니다.

을/를 금치 못하다, 을/를 금할 길이 없다, 을/를 금할 수가 없다, 을/를 마지아니하다


'을/를 참다'를 부정한 을/를+금치 못하다 따위는 매우, 몹시+하다 따위로 손질합니다. “애석한 마음 금할 길 없네.”는 “매우 애석하네, 매우 슬프네.”따위로 나사못을 교환합니다. “민족 분단에 통탄해 마지아니하다.”는 “민족 분단을 매우 통탄합니다.”라고 도료를 바릅니다.

할 가치가 없다, 할 것이 없다, 할 필요가 없다


'에 족하다'를 부정한 할 가치가 없다, 할 것이 없다, 할 필요가 없다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로 코팅을 입힙니다. “그 사람은 신뢰할 가치가/필요가 없다.”는 “그 사람은 신뢰하지 않아도 된다.”가 됩니다. “이상히 여길 것이 없다.”는 “이상히 여기지 않아도 된다.”라고 포장지를 입힙니다. 참고로 에 족하다는 만큼, 만한, 충분한 따위로 받아줍니다. “피해를 보상하기에 족한 금액”은 “피해를 보상하기에 충분한 금액”으로 박스를 씌웁니다.


쇠붙이 가공을 마무리를 해 봅니다. 쇠붙이가 일본산 불량 재료이므로 부정으로 가공해봐야 달라지지 않습니다. 개꼬리 삼 년 묻어도 황모(족제비 털) 안 되듯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하는 불량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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