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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Mar 26. 2022

후치사 상당구를 출생 신고하면서

#3  후치사 상당구의 정의

후치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영어를 공부하면서 전치사는 들어봤는데 후치사는 들어본 적은 잘 없을 겁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전치사는 앞에서 꾸미는 말이고, 후치사는 뒤에서 꾸미는 말입니다. 대표주자는 조사와 어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어 투 후치사 상당구이므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말에서 후치사를 인정할지 말지 학자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크게는 최현배 씨와 이희승 씨를 중심으로 한국어는 서양어와 다르게 단어 변화가 없어 조사와 특수 조사로 구별되므로 후치사를 인정하지 않는 의견이 있습니다. 주석 1) 또한 람스테트(G. J. Ramstedt) 씨와 이승욱 씨를 중심으로 조사와 구별되는 후치사가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특히 람스테트 주석 2)씨는 명사성 후치사와 동사성 후치사로 구별하였습니다. 명사성 후치사인 위, 중, 밑, 아래, 앞, 끝, 다음, 뒤, 안, 속, 밖 따위는 일본어 투 형식 명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게다가 동사성 후치사는 후치사 상당구인 ‘말미암다, 인하다, 대하다’나 부정 표현인 ‘없다’와 대응합니다. 곧 람스테트 견해대로라면 후치사 상당구는 동사에서 유래하였다고 판단됩니다. 실제로 ‘인하다’와 ‘대하다’와 같은 1글자 한자어 동사에서 후치사 상당구가 유래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말은 후치사 상당구가 발달한 일본어를 답습하기에 그 개념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구를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말에서 둘 이상 단어가 결합하는 구는 속담이나 관용구가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구 형태인 후치사 상당구를 어느 품사에 넣어야 할지 불필요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다음은 조사 ‘니(に)’와 결합하는 구의 정의를 알아보실까요? 김문오 씨와 홍사만 주석 3) 씨는 일본식 후치사란 일본어 조사 ‘니(に)’가 1음절 한자 어근인 대(對), 인(因), 향(向) 따위와 스루 동사[する: 우리말 하다 따위와 대응]의 ‘연용형’과 결합하여 관용적으로 굳어진 형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서 연용형은 일본어에서 기본형에서 활용한 형태입니다. ‘에 관하다·에 대하다’를 연용형으로 바꾸면 ‘에 관하여·에 대하여’가 됩니다. 하지만 몇 가지를 추가해 봅니다. 

    

 첫째 조사 니(に)뿐만 아니라, 조사 오(を)나 조사 토(と)와 결합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로 하여금, 을/를 토대로, 을/를 통하다’는 조사 오(を)가 결합한 형태이고, ‘와/과 동시에, 와/과 아울러’는 조사 토(と)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둘째 ‘연용형’ 말고 ‘기본형·연체형’이나 ‘미연형’이나 ‘조건형’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에 관하다’와 ’에 관한’은 ‘기본형·연체형’이고, ‘에도 불구하고’와 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미연형’이고, ‘에 따르면’와 ‘에 비하면’은 ‘조건형’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일본어 투 후치사 상당구로 새롭게 호적에 올립니다. 일본어 투란 일본어를 따라 했고, 후치사란 전치사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뒤에서 앞말을 꾸며줍니다. 상당구란 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정의할 수 있으므로 일본어 투와 후치사와 상당구를 합쳐 일본어 투 후치사 상당구라고 출생신고를 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는 후치사 상당구로 줄여서 쓰겠습니다. 

    


주석 1) 고대영, "현대국어의 후치사에 대한 연구: ‘없이, 밖에, 말고’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서울, 2006), 3-25쪽, http://www.riss.kr/link?id=T10329049, (2021. 4. 13. 확인)     

주석 2) Gustaf John Ramstedt, A Korean Grammar (Helsinki: Suomalais-Ugrilainen Seura, 1939), 150-158쪽. https://altaica.ru/LIBRARY/KOREAN/Ramstedt,%20A%20Korean%20Grammar.pdf, (2021. 10. 31. 확인).     

주석 3) 김문오, 홍사만, 쉽게 고쳐 쓴 우리 민법: 전면 개정을 대비하여 (서울: 국립국어연구원, 2013), 330쪽, https://korean.go.kr/front/reportData/reportDataView.do?mn_id=207&report_seq=337, (2021. 10. 31. 확인).     






후치사 상당구의 가족 관계도

후치사 상당구의 특징 

    

 후치사 상당구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보시죠. 첫째 가족 관계를 형성합니다. 후치사 상당구는 1글자 한자어 동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식으로는 후치사 상당구류 접속부사[설명: 후치사 상당구를 활용해서 만든 접속부사]가 있습니다. 큰형으로는 일본어 투 형식 명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인 1글자 한자어 동사는 관하다, 대하다, 반하다, 응하다 따위가 있습니다. 큰 형인 형식 명사는 상황·조건의 ‘경우, 때, 시’나 원인·이유의 ‘때문에, 탓에 바람에, 덕에, 덕분에, 덕택에’ 따위가 있습니다. 자식인 후치사 상당구류 부사에는 이에, 그에 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그치지 아니하고 따위가 있습니다. 후치사 상당구의 가족 관계도는 붙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유령입니다. 후치사 상당구와 ‘까지, 도, 만, 은/는’과 같은 조사가 결합하면 조사만 남습니다. “일상의 생활에 있어서까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일상생활까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라고 짧게 고칩니다. “추가 보험금은 특수한 상황에 한하여만 지급할 수 있다.”는 “추가 보험금은 특수한 상황에만 지급할 수 있다.”라고 갈아줍니다.

     

 셋째 다양한 이란성쌍둥이가 있습니다. ‘에 관하다·에 대하다’는 접두사 대(對)와 접미사 당(當)과 중첩 조사 ‘에의’와 형식 명사인 상대와 대상과 상(上)과 같은 다양한 이형 동의어가 존재합니다. 

     

 넷째 조사 ‘의’나 형식 명사와 쉽게 결합합니다. “사랑에 대해서의 의견”은 조사 ‘의’가 달라붙었습니다. 민법 제908조의3 제2항의 “… 부부의 일방이 그 배우자의 친생자를 단독으로 입양한 경우에 있어서의 ….”는 조사 ‘의’와 형식 명사와 후치사 상당구가 한데 모여 있습니다.

      

 다섯째 후치사 상당구끼리 뜻이 비슷하여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육상에 있어서는 논할 필요가 없다.”와 “육상에 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다.”나 “육상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다.”와 동일합니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하여 전파된다.”와 “말라리아는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와 비슷비슷합니다. 또한 “미국 수출에 한하지 않고 일본에도 수출한다.”는 “미국 수출에 더하여 일본에도 수출한다.”나 “미국 수출에 이어 일본에도 수출한다.”와 비등비등합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후치사 상당구는 1음절 한자어 명사와 일본어투 형식 명사와 후치사 상당구류 접속부사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또한 후치사 상당구끼리 비슷비슷합니다. 

    



말(!) 고기는 씹는 게 아닌 갈아 마셔야 한다.

후치사 상당구를 고치기 

    

 말(言) 고기는 씹는 게 아닌 갈아 마셔야 합니다. 금방 태어난 아기는 고기를 씹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갈아 마실 수 있도록 믹서로 갈아 주어야 합니다. 후치사 상당구도 죽처럼 갈아먹을 수 있도록 고기 근육까지 믹서 칼질이 들어가야 합니다.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법제처 주석 1)의 『알기 쉬운 법령 정비』에서 냄새를 맡아보겠습니다. ▲ 에 관하여는: 는, 을/를, 에, 에 관하여 ▲ 에 대하여: 로 하여금, 는, 를, 에게, 에 대하여 ▲ 에 있어·에 있어서: 가 발생하여, 경우, 때, 로, 로 인하여, 시, 에서, 하는 경우, 하여, 하는 데(에), 할 때 ▲ 에 한하여: 에서만, 으로만, 에 한정하여 ▲ 에 한하다: ‘에/로 한정한다, 만, 만을 말한다, 만 해당한다’로 고친다고 풀이하였습니다. 법제처의 풀이는 고기만 좋아하는 육식주의자처럼  조사 고치기에 몰두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미나 용언으로 불판을 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이에나처럼 토한 고기를 다시 씹듯이 다른 후치사 상당구를 쓰거나 일본어 투 형식 명사로 고쳐 쓰는 모순이 보입니다.

      

 두 가지만 보겠습니다. 법제처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대하여 ….”를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 하여금 ….”으로 순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에 대하여’와 ‘로 하여금’은 모두 후치사 상당구입니다 그러므로 ‘에게’로 고칩니다. 또한 법제처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공사의 도급계약에 있어서 ….”를 “계약담당공무원은 공사의 도급을 하는 경우 ….”로 변경하였으나 ‘에 있어서’와 ‘ 경우’는 모두 고쳐야 할 말입니다. 그러므로 “계약담당공무원은 공사의 도급 계약을 맺으려면 …”으로 변경해 줍니다. 

    

 결론입니다. 고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앞에 어떤 명사가 오는지 보고 바로잡습니다. 앞말에 일반 한자어 명사가 오면 조사 따위로 받아줍니다. 동사성 한자어 명사가 오면 어미로 매끄럽게 합니다. 또한 조사 ‘에’ 대신 ‘와/과’나 ‘을/를’' 따위로 교환하거나 다른 용언으로 손봐줄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붙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주석 1) 법제처, 알기 쉬운 법령 정비, 제9판 (서울: 행복한 나무, 2019), 31-47쪽, https://www.moleg.go.kr/board.es?mid=a10108030000&bid=0001&act=view&list_no=191536&tag=&nPage=1&keyField=&keyWord=&cg_code=, (2021.10. 31.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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