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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Mar 26. 2022

아기 얼굴처럼 변신하기

#4  상황·조건의 후치사 상당구: 에 있어서

 아기는 방 안에 있는 꽃입니다. 아기 얼굴은 오만가지로 변신합니다. 아기 얼굴처럼 ‘에 있어서’는 변신 천재입니다. ‘에 있어서’의 원형인 ‘있다’는 15세기에도 존재하였습니다. 이때는 “당신 거기에 있어 줄래요.”와 같이 장소를 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후치사 상당구로 사용되는 ‘에 있어서’는 근대 시대에 일본에서 유입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에 있어서’는 본디 장소를 나타냈으나, 상황, 조건, 시간, 분야로 진화하였습니다. 또한 조사랑 형식 명사와도 결합하여 변신을 거듭합니다. ‘에 있어서의, 에 있어서는, 경우에 있어서, 경우에 있어서의’가 예시입니다. 유사품으로는 ‘에게 있어서’가 있습니다. 주로 사람의 상황을 나타내므로 ‘에게, 한테’로 교체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그에게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형태를 교정합니다.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네 가지 해결책이 있습니다. 첫째 일반 명사가 앞에 오면 조사로 바꿉니다. 간판선수로는 ‘으로, 에, 에서’가 있습니다. 이것은 ‘에 있어서’가 장소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인생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라고 수정합니다.  

   

 둘째 동사성 한자어 명사가 앞에 오면 상황·조건의 어미로 교정합니다. 다시 말하면 ‘거든, 는데, 는바, 려면, 면서, 아/여/야, (으)면’으로 손보면 됩니다. “임금 협의에 있어서 의견이 달랐다.”는 “임금 협의를 하면서 의견이 달랐다.”라고 형태를 바꿉니다. “우승 경쟁에 있어서 선수들 역할이 중요하다.”는 “우승 경쟁을 하는데 선수들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바로잡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협의나 경쟁은 ‘하다’가 사라진 동사성 한자어 명사입니다.

     

 셋째 조사와 결합하면 생략합니다. ‘에 있어서’과 ‘까지, 도, 만, 만큼, 은/는’과 같은 조사가 결합하면 조사만 남습니다. “내 삶에 있어서까지 영향을 미치다.”는 “내 삶까지 영향을 미치다.”라고 교정합니다. 형사소송법 97조 2항에 규정된 “구속의 취소에 관한 결정을 함에 있어서도 ….”는 “구속을 취소하는 결정에서도 ….”라고 짧게 줄일 수 있습니다.


 넷째 분야를 나타낼 때입니다. 이때는 다른 형태도 있습니다. ‘에 관한 한은, 에 관해서는, 에 관한 것이라면, 에 대해서는, 에 대한 것이라면’이 있습니다. 결국 분야를 나타내면 ‘에 있어서, 에 관하다, 에 대하다’는 동일합니다.  고치는 방법은 ‘은/는’ 계통을 활용합니다. ‘만큼은, 만은, 에서는, 은/는’으로 받아줄 수 있습니다. “연애에 있어서는 지독한 초보자이다.”는 “연애만큼은 지독한 초보자이다.”라고 교대할 수 있습니다. “싸움에 있어서만은 누구에게도 지기 싫었다.”는 “싸움에서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었다.”라고 변화를 줍니다.

     

 다음은 ‘에 있어서’의 변형을 알아보겠습니다. 형식 명사로는 ‘경우, 때, 시, 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후치사 상당구인 ‘에 제하다, 에 즈음하다’가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구 형태인 ‘함에는, 함에 있어서는’이 있습니다. 

    

 첫째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어에서 경우는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본보기나 사례를 뜻하는 실질 명사 ‘경우[ケース]’가 있습니다. “물만 먹고 살찌는 경우”는 “물만 먹고 살찌는 사례”라는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ばあい/場合]는 형식 명사로 사용됩니다. 형식 명사로 사용되면 ‘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상황·조건의 어미로 고치거나 그나마 우리말인 ‘때’로 교체합니다. “특정후견의 심판을 하는 경우”는 “특정후견 심판을 할 때”라고 새 집을 지어 줍니다.

     

 경우를 좀 더 설명하겠습니다. 일본어에서 노(の)와 바이(場合)가 결합합니다. 이것은 사람이나 사물의 입장이나 처지를 나타냅니다. 우리말로는 ‘의 경우’가 됩니다. “학생의 경우 친구가 가장 소중하다.”는 “학생은 친구가 가장 소중하다.”라고 갈아줍니다. 비슷한 말로 입장이나 처지도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기업으로서는 수용하기 곤란하다.”라고 수정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는 “가난한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라고 탈바꿈합니다. ‘거개의 경우, 대부분의 경우, 대다수의 경우’도 ‘대부분은, 대부분’으로 짧게 만듭니다. 

    

 둘째 형식 명사 때, 시, 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경우와 같은 방법으로 고쳐줍니다. “사랑할 때는 주변 사람이 안 보인다.”는 “사랑하면 주변 사람이 안 보인다.”라고 수정합니다. 계약 시, 종료 시, 시작 시에 쓰는 시(時)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할 때, 종료할 때, 시작할 때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제(際)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의 가사인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는 낳을 무렵이나 낳을 때가 잘 어울립니다. 

    

 셋째 ‘에 제하다’와 ‘에 즈음하다’가 있습니다. 이것은 불확정한 시간을 표현합니다. 또 형식 명사 제(際)와 형제지간입니다. 그러므로 ‘께, 때, 무렵, 쯤’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삼일절에 제하여 시를 발표하다.”는 “삼일절 무렵 시를 발표하다.”라고 교체합니다. 아니면 ‘맞이하다, 앞두다’로 교대할 수 있습니다. 헌법 69조에 규정된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는 “대통령은 취임하면서….”나 “ 대통령은 취임을 맞이하여 ….”라고 다듬습니다.

     

  넷째 ‘함에는, 함에 있어서’가 있습니다. 이것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손질을 합니다. 민법 5조 1항의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하려면 법정대리인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고 변화를 줍니다. 또한 “일을 함에 있어 만족을 느낀다.”는 “일을 하면서 만족을 느낀다.”라고 손을 봐줍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에 있어서’는 장소에서 시작해서 상황, 조건, 시간, 분야로 진화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구, 후치사 상당구, 형식 명사’로 발전을 거듭합니다.

     



내 책상에 걸치지 마

범위의 후치사 상당구: 에 걸치다, 에 달하다

      

 초등학교 시절, 짝지랑 붙여있는 책상을 사용하였습니다. 껌 하나 안 준다고 사이가 틀어져 책상에 선을 그렸습니다. 이윽고 “내 책상에 걸치지 마. 그럼 모두 가져갈 거야.”라고 전쟁을 선포합니다. 어쩌면 종잇장처럼 얇디얇은 자존심이 우정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에 걸치다’는 본디 ‘가로질러 걸리다’나 ‘얹히다’를 뜻하였습니다. 이것은 ‘으로, 에, 에서’로 받아줄 수 있습니다. “다방면에 걸쳐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다방면에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라고 줄일 수 있습니다.

     

 문어는 심장이 세 개가 있다고 합니다. 문어 심장처럼 ‘에 걸치다’도 두 가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을 나타내면 ‘동안, 내내’ 받아줍니다. 다른 하나는 ‘부터’와 ‘에서’와 짝지어 두 시간 사이를 나타내면 ‘까지’로 손질합니다. “사흘에 걸쳐 살 집을 보았다.”는 “사흘 동안 살 집을 보았다.”라고 칼날을 갈아줍니다. “10월 1일부터 10월 31일에 걸쳐 산불 예방 운동을 진행하였다.”는 “10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산불 예방 운동을 진행하였다.”라고 보정합니다. 

    

  에 걸치다와 비슷한 ‘에 달하다’도 세 가지 의미가 존재합니다. 첫째 ‘이르다, 도달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누적 인플레이션이 두 자릿수에 달하다.”는 “누적 인플레이션이 두 자릿수에 이르다.”나 “누적 인플레이션이 두 자리에 도달하다.”라고 맞바꿔줍니다. 둘째 ‘이/가 되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민법 800조의 “성년에 달한 자는 자유로이 약혼할 수 있다.”는 “성년이 되면 자유로이 약혼할 수 있다.”가 제법 잘 어울립니다. 마지막으로 정도·수준을 뜻합니다. 이것은 ‘가량, 까지, 남짓, 만치, 만큼, 은/는, 쯤’으로 대체합니다. “2조 원에 달하는 보상비용”은 “2조 원가량 보상비용”라고 뜯어고칩니다. “한국 면적 50%에 달하는 평야”는 “한국 면적 50% 남짓한 평야”라고 교환해합니다.


 수업이 끝났으니 오늘 배운 내용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에 걸치다’와 ‘에 달하다’는 문어 심장처럼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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