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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an 25. 2017

태양이발관

오래된 것에 대한 추억



집 근처 새로 생긴 태양이발관


 국민학교 3학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 근처에 이발소가 새로 생긴 것이. '태양이발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그 시절 이발소들이 그러했듯 빨간색 파란색 흰색의 사인볼이 아래 빗과 가위를 꽂은 흰색 가운 차림의 아저씨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동생과 나를 데려가 머리를 자르셨다. 예전에 다니던 이발소 아저씨는 '고개를 숙여라. 앞을 봐라.'라고 말을 하지 않고 휙휙 당신의 손으로 내 목을 꺾으며 머리를 잘라 좀 무서웠는데, '태양이발관' 아저씨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전라도 사투리, 그리고 머리를 자르고 나서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빨대를 꽂아주시며, "또 와잉~"하고 배웅해 주셔서 너무 좋았다.

 

 아저씨에게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다. 아들 이름은 정현균. 같은 국민학교를 다녔지만 같은 반인적은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같은 반이었던 현균이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공부도 곧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태양이발관' 아저씨는 나에게 더 잘해주셨던 것 같다.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학습지는 뭐하는지, 담임 선생님은 어떤지 이야기하면서 아저씨와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 날카로운 면도날로 잔털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더 이상 맞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중학교를 졸업하며 현균이와 다른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는 역사가 오래된 사립 남학교로, 나는 새로 생긴 공립 공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앞머리 5cm'의 엄격한 두발 규정이 있었던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는 조금 자유로운 편이었다. 이발이 끝날 무렵이면 항상 면도크림을 붓에 찍어 한가득 구레나룻에 바르고, 날카로운 면도날로 잔털을 마무리를 하는 '태양이발관'의 방식은 더 이상 맞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태양이발관'이 아닌 또래 친구들이 다니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뭐 그래 봤자 얼마나 차이가 있었겠냐마는 스스로 멋진 헤어스타일을 뽐내는 미용사 누나들은 머리를 자르고 나면 젤과 에센스도 발라주며 보다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구레나룻을 조금 남겨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태양이발관'은 등굣길에 있었고, 아침에 학교에 갈 때면 아저씨는 으레 일찍 나와 수건을 너시며 담배를 피우곤 하셨다. 아저씨를 배신한 다음 날, 그날도 아저씨는 수건을 널고 계셨는데, '단정하게 자른 내 머리를 아저씨가 보고 뭐라 하면 어쩌지.'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수 십 년간 이발사를 하셨으니 모르실리 없었겠지만 환하게 웃으시며 인사를 받아주셨다.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나는 머리를 자른 날이면 죄송한 마음으로 이발소 앞을 지나갔다. 그때마다 아저씨는 이해한다는 듯이 환하게 웃어주셨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예전처럼 머리를 자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다. 현균이랑은 아주 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가 갈리고 나서는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여전히 '태양이발관'을 다니시는 아버지를 통해 소식만 가끔 들을 뿐이었다.


 다시 또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고, 가끔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할 때도, 회사에 들어가 출근을 할 때도 아저씨를 마주쳤다. 이발소의 간판 디자인이 바뀌고 아저씨의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났지만 이발소 이름과 매일 아침 수건을 너시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 샤기컷, 모히칸, 투 블록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아저씨의 가위질 스타일과 우리 아버지와 같은 단골들 역시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비스 도중 헤어 디자이너와 잡담을 나눌 의향이 있으십니까?
1번 예, 2번 아니오.


 결혼을 하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면서 머리를 자를 미용실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 곳 저곳 찾던 중, 저렴한 가격에 남성 커트를 하는 헤어숍을 발견했다. 규모가 크고 젊은 미용사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다.


 헤어숍에 들어가면 코트를 받고 "찾으시는 선생님이 계신가요?"라며 공손하게 묻는다. 머리를 자르는 헤어디자이너가 따로 있고 샴푸와 마무리하는 보조도 따로 있다. 오늘은 핼러윈 시즌이라고 모든 종업원들이 마녀모자나 호박 모자를 쓰고 손님들을 맞는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자마자 헤어디자이너가 친근한 웃음으로 핼러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스물셋이나 되었을까. 친구들이 이태원 핼러윈 파티를 가자고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별로 관심 없는 주제다. 신나서 떠드는 어린 친구에게 차마 관심 없다고 말할 수 없어 그냥 하는 얘기에 맞춰주다 보니 내가 손님인지 그녀가 손님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난달에 왔을 때는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내 얘기를 들어주나 싶더니 곧장 일찍 결혼한 친구 얘기로 넘어간다. 그래서 헤어숍에 들어갈 때 이런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서비스 도중 헤어 디자이너와 잡담을 나눌 의향이 있으십니까?
1번 예, 2번 아니오.'


 '태양이발관'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머리를 자르며 결혼 생활 재밌냐는 말을 건네시며 "아유 우리 현균이도 얼른 좋은 샥시 만나서 장가가야 하는데~"라고 하실 것 같다. 그리고 의자를 눕혀 면도크림을 턱 밑까지 바르시고는 "면도는 원래 5천 원 추간디, 오늘은 오랜만에 왔으니 공짜여~"라며 예전처럼 푸근한 미소에 요구르트를 건네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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