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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Feb 15. 2017

스타 강사의 추억

설민석보다 유명했던 그의 이야기


하나님이 수능 날 받을 점수를 점지해 주었나니



 21세기를 나흘 앞둔 2000년 12월 28일,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서울 명일동 강동 대일학원 앞은 예비 고3 수험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아니 등록했으면 됐지 뭐 강의장 입장하는데 뭔 줄이 이렇게 길어.'  


 라고 투덜대며 느지막이 맨 뒤에 줄을 섰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300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나 그다지 넓지 않은 강의실에는 손바닥만한 책상이 통로도 없이 빼곡히 차 있었고, 그나마 몇몇 자리는 기둥 뒤에 가려 칠판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물론 책상 수는 수강증을 지참한 모든 학생이 다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모자라지 않았지만, 그중에는 오랜 기다림으로 쟁취할 수 있는 VIP석과 R석이 있는 반면, 나처럼 시작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이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B석과 C석도 있었다.


 친구와 나는 할 수 없이 드문 드문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 떨어져 앉아야 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앞뒤 책상 사이 간격은 너무 좁았고, 통로로 나가려면 예닐곱 명의 양해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닭들은 양계장에서 A4용지 한 장 만한 크기에서 사육된다는데 그 강의장에서 내게 허락된 자리는 한 A4 여덟 장 크기 정도 되었으려나.

 

 수업 시작 시간이 20분 정도 지났을 때였나, 남자치고 긴 반곱슬 머리를 4:6 가르마로 탄 키 작고 배 나온 아저씨가 느긋하게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재 앞에 프린트된 얼굴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사진이 실물보다 나았던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지각에 대한 미안한 기색도 없이 마이크를 잡은 그는 강남에서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한 '손 선생 통합사회'의 스타강사 손주은이었다(現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세 시간 강의 중 한 시간은 잔소리로 잡아먹으며 수험생들의 열등감을 증폭시키는 강의법으로 유명한 막말의 대가, 하지만 속된 말로 존나 잘 가르치긴 하니까 더러워도 참고 들어야 하는 그런 '스타' 강사였다.


 물론 거의 16,7년이 지났기 때문에 수업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수업 중에 들려주었던 에피소드들은 기억에 많이 남았다. 주로 자신이 십 수년 동안 거쳤던 학생들의 이야기인데, 그 내용들이 어찌나 말초적이고 황당하였는지 듣던 당시에도 어이가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가령 과학고에 다니던 한 학생이 밤마다 찾아와 언어영역 점수가 죽어도 안 올라서 괴롭다며 눈물을 쏟았는데, 어느 날 평온한 얼굴로 찾아와 하나님이 나타나 자기가 수능 날 받을 점수를 점지해 주셨단다. 하나님이 그의 손바닥에 3, 9, 8, 5 이 네 숫자를 차례로 떨어뜨려 주셨고, 실제로 그는 수능에서 398.5점을 받았다는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럼 너는 밤마다 남편 노리개로 니 청춘 보내며 인형처럼 사는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금부터 옮겨 적을 이 이야기이다. 자극받아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풀었던 이야기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마초적이며 인격 모독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들었다.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결혼을 했는데, 학생이잖아. 돈이 없었어. 그래서 과외를 시작했지. 정확히 기억하는데, 1987년 3월 2일이었어. 압구정동에 있는 어떤 부자 집에서 고3 짜리 과외 선생을 구한다기에 갔지. 갔더니 뚱뚱하고 존나 못생긴 여자애가 앉아있어. 니 반에서 몇 등하노 물어보니 기들어가는 목소리로 63명 중에 62등이래. 가 뒤에 있는 아는 체육 특기생이고.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 아니 이 집 부모는 아가 고3이 되도록 뭐했길래 이모냥으로 키워놨는지 나 원 참.


 그래서 공부도 중요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아를 앉혀 놓고 이야기를 했어. 그래 니 반에서 62등이지. 니 이 성적으로 대한민국에 갈 수 있는 대학은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 나와서 니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노. 그럼 너거 부모는 하나밖에 없는 딸 인생 살리보겠다고 아마 별 짓을 다 할 거야. 일단 성형부터 시키겠지. 눈도 찢고, 지방도 녹이고 해서 돈이 얼마가 들어도 기갈나게 만들끼야. 그래서 신랑감 찾아 고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집이라도 보내겠지. 그럼 너는 밤마다 남편 노리개로 니 청춘 보내며 인형처럼 사는기다. 아 생기면 놓고, 그게 내년 이후로 펼쳐질 니 인생이다. 그랬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


 그다음 시간에 갔더니 아 눈빛이 쫌 달라져 있어. '선생님,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좀 독한 마음을 먹었구나 싶어서 기초도 없는 애를 가지고 집합 명제부터 가르쳤어. 고3 한 해 동안. 그래서 결국 OO 대학에 보냈어. 나중에 유학도 가고 지금은 행정고시 패스해서 결혼도 하고 잘 살아. 아직도 가끔씩 고맙다고 연락도 오고 찾아와. 그런데 너거들은 아직도 눈깔도 흐리멍덩하고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덜 돼서 수업 시간에 욕 좀 쳐들었다고 뒤에서 씨부렁거리기나 하고! 엉!"





스타 강사들, 너무 쉽게 많은 돈을 벌었다.


 이랬던 사람이, 강의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제 경영자의 위치에 올라서고 나니 언론에 나와 예전과 달라진 의견을 피력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 명문대 나와도 소용없다. 어차피 금수저 아니면 별 볼일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차라리 공부로 안될 거 같으면 깽판을 쳐라."


 "스타 강사들, 너무 쉽게 많은 돈을 벌었다.(자기는 쓸어 모았으면서!) 그래서 나는 사회에 환원하려고 한다(사교육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니 온라인 수강 아이디 공유하는 건 도둑질이라며 뭐라 하던 사람이 ㅎㅎ)."


 라며, 지난해부터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는 손 선생, 손주은 씨. 젊을 때 돈 많이 번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 부(富)란 다 유한하고 허망한 것임을 깨닫고, '그래 역시 길이길이 남는 건 명예지.' 젊은 날의 과오를 씻을 수 있는 자선 활동에 눈을 돌린다는데 결국 손 선생도 그런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걸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십수 년 전 몰아붙이듯 쏟아내던 그의 독설을 참아내며,


 '시부럴 내가 공부의 노예가 되어 저따위 잡설을  견디며 앉아있지, 대학만 가봐. 당신은 나한테 그냥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무시하며 지나가는 아저씨야.'


 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달라진 그의 최근 행보를 접할 때마다 아직 참 낯설기만 하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어떻게 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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