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 6화: 가장 값진 졸업장
도영식.
지체장애라 하기엔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영식이는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친구였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학교나 중학교에 '특수반'이라 일컬어지는 학급이 있었고, 영식이는 그런 곳에서 만날 법한 아이였다.
2학년 수련회 때, 영식이네 반 아이들은 반별 장기자랑 무대에 영식이를 올렸다. 같은 학년 750명 전체 앞에서 뭐라도 해야 했던 영식이는 어설픈 한 두 동작을 반복하며 나름의 춤을 추었고 그 슬프고 애석한 춤사위에 아이들은 웃었, 아니 비웃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나도 그때 웃었다.
그 날 그 반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께 호되게 혼이 났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유달리 정의감이 넘치시던 그 담임 선생님은 3학년 첫 수업에 우리 반에 들어와 영식이가 있는 걸 보고(5화에 등장한 문학 선생님)
"니들 도영식이 괴롭히지 마라. 괴롭히다 걸리면 다 직이 삔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영식이는 누가 봐도 우리 반에서 가장 타깃이 되기 쉬운 대상이었다.
메이저급 날라리들은 영식이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지만 오히려 깝죽대는 조무래기들은 그를 괴롭히며 알량한 힘을 과시했다. 물론 영식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노려볼 뿐이었지만 그런 의연함이 오히려 그 녀석들을 더 자극했던 것 같다.
"너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니?"
영식이는 새 학년에 올라와 짝이 된 친구에게 항상 이렇게 물었다. 고등학교 와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중1 때부터 그랬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영식이가 외계에서 보낸 사신이다, 사실 스티븐 호킹 같은 천재다 하는 말을 늘어놓았고, 쉬는 시간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 외계인과 교신 중이라며 수군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영식이를 학급 내에 2등 시민으로 보려는 아이들의 왜곡된 시각을 반영할 뿐이었다.
한편, 영식이는 고집이 굉장히 센 아이기도 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2학년 말에 그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양천구 신정동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5호선 오목교역에서 둔촌동역까지 28개 역을 지나쳐 등하교를 했던 영식이는 담임이 아침 자율학습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했지만 꼭 7시 30분까지 학교에 왔다. 하루는 1교시 수업 중에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는데 깜빡 지하철에서 잠들어서 종점까지 다녀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또 영식이는 전과목 교과서를 가방에 다 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고3 정도 되면 교과서 한 권이 기본 300페이지는 되기 때문에 그 두께가 상당하다. 그래서 국민학교 때부터 쓴 듯한 영식이의 낡은 조다쉬 가방은 늘 터질 것만 같았다.
"사물함 있는데 왜 책을 다 들고 다녀?"
라고 물었지만 영식이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등산배낭처럼 부풀어 오른 가방을 매일 같이 메고 왕복 60km 거리를 그렇게 말없이 통학할 뿐이었다.
하루는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독서실에 가고 있는데 전자제품 가게 쇼윈도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영식이를 마주쳤다. 우리는 학교 밖에서 마주친 영식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영식이가 이렇게 주말에 혼자 외출도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여,
"도영식!”
하고 크게 불렀다. 하지만 그는 살금살금 걷다가 사람을 보고 놀란 고양이처럼 우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대꾸도 없이 이내 다시 쇼윈도로 눈길을 돌렸다.
"우리 영식이 친구들이구나."
우리 뒤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우리 엄마보다 좀 더 나이 들어 보이시고 마음고생을 좀 하신듯한, 하지만 온화한 인상의 영식이 어머니.
언젠가 인터넷에 떠돌던 어떤 뭉클한 웹툰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가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혼자 중얼거리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만난다. 대부분 그들을 쳐다보고 수군거리며 자리를 피하지만, 장애인들과 그들의 부모에게는 혼자 집 밖으로 나와 대중교통을 타고 시내 어디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큰 일이라고 했다.
"어디서 지하철을 타고 몇 번 칸에서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 어디로 갈아타고, 몇 번 출구로 나가서 길을 쭉 걷다가 우회전해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어린아이 가르치듯 꼼꼼히 알려줘도 외출한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하게 되고, 그 자식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 마음을 놓고 혼자서도 잘 해낸 내 새끼가 그렇게 대견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영식이의 케이스는 지체장애인들과 많이 다르지만, 아마 영식이 어머니도 매일 학교에 다녀온 아들을 볼 때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다.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당신의 아들이 도시 반대편에 있는 학교에 가려고 꼭두새벽 꾸벅꾸벅 졸면서 등교하는 모습이 안쓰러우셨을 테고, 행여나 아이들이 놀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을까. 공부는 못하더라도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 날, 거리에서 만난 영식이에게 인사를 건넨 건 어머님께는 죄송하지만 영식이의 친한 친구여서가 아니었다. 반갑다기보다는 신기한 감정 때문에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런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영식이 어머니에게는 다르게 보였을 것 같다. '우리 아들한테도 학교에서 말 걸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구나' 하고.
공부를 좀 못하고(혹은 안 하고),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고, 무단결석을 하고, 불량배들한테 맞고 들어오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집에 늦게 들어오고, 혹은 영식이처럼 보통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어도, 모든 아이들은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말썽 피우지 않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을 지향점으로 제시하고,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부진아, 문제아로 불렀지만, 그렇게 함부로 아이들을 구분할만큼 그 하나하나의 존재는 결코 하찮지 않다.
영식이 어머니의 기대는 소박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보통 아이들 틈에서 꿋꿋이 성실하게 학교에 나가 별 탈 없이 학업을 마치는 일.
졸업식날, 가장 뭉클하고 감동적이었을 학부모는 전교 1등으로 교육감 상을 받은 아이의 어머니도, 구청장 상을 받은 학생회장의 어머니도 아닌, 누구보다 값진 졸업장과 정근상을 받은 영식이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조금 늦었지만 그렇게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