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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an 18. 2018

타인의 삶

고3. 5화: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신동진.


 한껏 기른 구레나룻을 젤을 발라 내려 붙이고, 고개를 숙인 것 같지만 위로 치켜뜬 눈과 굳게 다문 입. 손목에 붕대만 감았다면 승리에 굶주린 파이터로 보일만한 동진이는 어느 날부턴가 조회가 끝나면 교실 뒤켠 비어있던 내 옆 자리로 옮겨 와서 수업을 들었다.


 "신동진이 일어나서 읽어 봐."


 그의 2학년 담임이었던 문학 선생님은 교과서에 희곡 작품이 나오면 꼭 그를 일으켜 세워 읽도록 시켰다.


 "오오, 오필리아여.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받아도 참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감정을 실어 낭독하는 동진이의 모습에 비몽사몽 깨어 앉아있던 나는 내심 놀랐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그냥 국어책 읽듯이 마지못해 문자 그대로 읽었을 텐데 그는 그냥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그 이상의 카리스마를 뿜으며 마치 연극배우가 대본 리딩을 하듯 대사를 읊었다.


 1학년 때부터 동진이와 계속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동진이는 원래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다고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고 대학 가는 것과는 점차 멀어졌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친구라는 것도 귀띔해 주었다.


 그날부터 가끔은 동진이가 뭐 하는지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슥삭슥삭 펜을 움직여서 부지런히 뭘 집중해서 하는 것 같은데 낙서 같은 것은 아닌 듯했다. 자세히 공책을 들여다보니 녀석은 놀랍게도 수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수학이 재밌어?"

 하루는 동진이에게 물었다.


 "원래 1학년 말에 수학을 포기하려고 했어. 재미도 없고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이제 수학은 안녕이구나 하고 2학년에 올라왔는데 거기서 지금 수학 선생님을 만났지. 그래서 선생님 도움받아서 조금씩 하다 보니 재미있더라.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있어."


 (다른 얘기지만, 당시 수학 선생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실력자였다. 문제집도 여럿 쓰시고, 가르치는 교수법이나 문제 풀이가 너무나 명쾌하여 아이들 모두가 좋아했다. 운 좋게 우리는 2년 연속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3학년에 올라와 1반과 2반은 이 선생님이 맡으셨고, 3반만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첫 수학 시간에 1반과 2반에서는 "우아아!"가, 3반에서는 "아아아..."가 나왔다는 후문이다.)


 동진이는 이따금 수학 시간이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교단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나가시려는 선생님을 붙잡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때로는 다음 수업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계속되곤 했다. 그런 날은 방과 후에 선생님 자리로 찾아가는 듯했다.


 그런 동진이의 모습을 보면서 겉보기와 달리 참 멋진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에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좋은 목소리와 감정선을 가지고 연극에 대한 꿈은 접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쑥스러운 사연이 있을까 봐 차마 묻지는 못했다.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치열했던 고3의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개학날부터 얼굴을 비추지 않던 동진이는 그 후로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친하다는 아이들도 연락이 되지 않는 듯했고, 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도 수능이 코 앞이라 별로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다 중간고사를 건너뛰고 수능날이 다가와서야 동진이는 학교에 다시 나타났다. 졸업하기 위한 최소 수업일수가 간당간당하던 쯤이었다.


 그날 동진이는 교무실에 끌려가 30대의 건장한 체육 교사이던 담임에게 정말 복날의 개처럼 두드려 맞았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굳게 입을 다문채 남은 학기를 보냈다. 다른 수업은 물론 수학 시간에도 그냥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 이후로 동진이에 대한 기억은 없다. 졸업식에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졸업한 그 해 낙엽이 질 무렵,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동네 어귀 저쪽에서 걸어오는 동진이을 마주쳤다. 원래 조금 마른 체형이었는데 더 수척해진 동진이는 담배를 피우며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를 불렀다.


 "동진아!"


 예전처럼 땅을 보고 걷던 그는 흠칫 바라보고 당황한 듯 어색한 기색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 오랜만이다. 어... 언제 한번 봐야지..."


 '그래 그러자'며 헤어졌지만 우린 서로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초라한 행색의 자신이 싫어서 어쩌면 나를 먼저 알아보고도 그냥 지나치려 했는지도 몰랐다. 외려 내가 괜히 아는 척을 해서 불러 세운 건지도.


 그 후로 단 한 번 있었던 반창회에도 동진이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고,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쯤 되면, 크던 작던 사연이 없는 아이들이 없다. 어른들은 부모가 주는 돈으로 공부만 하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일탈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아이들 각자 겪는 성장 과정에서의 상처와 좌절, 그리고 스토리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체면과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민을 남과 공유하지 않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다. 고민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괜히 자신이 약해 보일까 봐, 아니면 상대를 불편하게 할까 봐 이야기하지 못하고, 상대편은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주제넘은 참견이 될까 봐 먼저 다가서지 못한다. 선진국에서는 보편적인 상담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고 인식이 미미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3에 딱 한 번 같은 반이 되어 오래 알고 지내진 못했지만, 짧게 관찰한 동진이는 꽤 괜찮은 녀석이었다. 돌이켜 보면, 아무 이유 없이 몇 주씩 결석할 녀석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말 못 할 큰 사정이 있던 그는 왜 결석했냐는 담임의 추궁에 끝까지 답하지 않고, 그냥 맞는 방법을 택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마 그 사정은 발설하는 순간 자존심에 상처만 입을 뿐, 담임이 나서서 해결할 수 없을 그런 종류의 것이었겠지.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외부업체를 통해 무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행여나 인사기록에 남을까 하는 불안감에 또는 상담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편견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한 번 상담을 받아보면 대부분 만족스럽다고들 한다.


 가족 일로 힘들어하던 한 선배는 그냥 들어주고 동조해주는 것만으로도 상담을 통해 큰 위안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도 모르게 묵혀두었던 말을 쏟아내고 울면서 묵힌 감정을 흘려보냈다는 후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겠지만 시간을 돌려 동진이의 깊은 얘기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굳게 닫은 그 입술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난 한 번도 묻지도 듣지도 못했다. 왜 연기의 꿈을 접었는지, 왜 학교에 나오기 싫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뭐라도 조금 달라졌을까.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각자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긴 인생사는 웬만큼 친한 사이에도 알기 어렵다. 서로 진짜 자신의 이야기는 뒤로한 채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불편함을 끼치지 않을 정도의 변죽만 보여주고 살고 있지 않은가 가끔 생각해 본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돌발사고가 터지면 "그럴 애가 아닌데..."하고 뒤늦게 무릎을 치며 놀라워다. 하지만, 사실 그 사고는 순간의 돌발행동이 아닌, 아무도 모르게 내면에서 전개되고 있던 진짜 그의 이야기의 결말이었다는 걸 우린 쉽게 간과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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