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tergrapher Feb 28. 2017

이제 떠나는 그대에게

우리의 '퇴임' 문화는 왜 이리도 잔인한가.


 사무실 유리문 밖으로 작은 체구의 60대 남자 모습이 비쳤다. 안에 누가 있는지만 몰래 보려 했는지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이내 사라졌다.  

5분 후, 실장님을 따라 담배 한대 피우러 나왔다. 헌데, 밖에는 아직 엘리베이터를 잡지 못한 그가 오도카니 서 있다.

"응... 그래 잘들 지내고, 아까 잠깐 들어가서 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사원증이 벌써 안되더라고."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평소에 잘 오던 엘리베이터가 유난히 오지 않는다. 후텁지근한 침묵 속에 그와 우리 사이에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이윽고 우리가 기다리는 쪽 엘리베이터의 문이 먼저 열렸다.

"건강하십시오..."

겨우 떠올려낸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연말은 회사의 달력에서 새로운 라이징 스타를 뽑는 시기이기도 하고, 또 오래된 별들이 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입사하고 몇 년째 겪는 일이지만, 가깝게 모셨던 임원들이 물러나실 때면 감정에 이입되어 서글프기도 하다가도 새로 오신 상사에게 금방 적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신입사원 때, 퇴직하시던 부사장님의 울먹이시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30년 가까이 일한 사람을 한 순간 매몰차게 내쫓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의 꿈인 ‘임원’, 더군다나 '끝판왕인 chief 레벨까지 경험하고 물러났다는 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 씁쓸하지만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많이 기울기도 했다.


 다만 물러나는 임원들이 박수받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여전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보통 금요일 저녁에 통보받고 주말에 짐을 싸, 그다음 주 월요일에 발령이 날 때면 부하 직원들의 대다수는 그 임원이 떠났는지 알지 못했던 경우가 많다. 매일 복작대며 같이 일하던 상사가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리는 일이 실제로 많은 회사에서 매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수십 년 간 회사에서 업무 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임원까지 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야반도주하듯 빠져나와야 할까.




 얘기를 들어보니 아내의 회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내는 특히 남의 일에 공감을 잘하는 편인데,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연말 인사철이 되면 술을 마시며 이 얘기를 하며 씁쓸함을 털어 넘기곤 한다. 그런데, 이 회사가 오늘 직원들을 모아 ‘임원 퇴임식’을 열었다며 아내가 흥분된 마음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회사 역시 발령이 나면 퇴직 임원들이 죄인처럼 인사도 없이 우르르 회사를 빠져나오곤 했다는데, 올해부터는 회사 차원에서 그들을 송영하는 자리를 만들었단다. 모두 대강당에 모여 소속 부서에서 대표로 한 명씩 나와 송사를 읽고, 대표이사가 감사패와 꽃다발도 전달하며 수십 년간 회사에 헌신했던 임원들에게 노고를 치하하는 멋진 자리. 아내는 당연히 예전부터 이런 행사가 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시작한 게 너무 잘됐다며, 본인 일이 아닌데도 감동적이기까지 했다며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20대에 회사에 입사하여 임원이 되면 대개는 4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기 마련이다. 설령 그들이 부진한 실적 또는 어긋난 의사결정으로 인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한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여 년간 젊음을 바쳐 최선을 다해 달려온 사람들일 게다. 성과 부진과 관리 미진을 이유로 경영자는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지언정, 헌신적으로 일했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도망치듯 빠져나오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던 '회사원으로서의 추억'을 매듭짓는 데에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작은 감사패와 꽃다발, 그리고 후배 직원들의 박수,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KBS'와 함께한 군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