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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Mar 26. 2017

The winner takes it all

세상은 단지 두 명의 Diva를 원치 않았을 뿐이다.


 2007년, 휴학하고 알바하며 번 돈으로 탱자탱자 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유럽여행 중, 런던에서 뮤지컬 몇 편을 보고 괜스레 감동받아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도 비싼 라이선스 뮤지컬을 혼자 찾아보곤 했었다. <맘마미아>, <렌트>, <캣츠>, <오페라의 유령> 같은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작품들은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감상한 뮤지컬 넘버들을 구해 며칠 동안 들으며 흥얼걸리기도 하고, 무대장치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도서관과 인터넷에서 찾아 읽어보곤 했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미스 사이공>이었다. 실제 헬기를 동원하여 사이공을 탈출하는 장면을 구현하기가 어려웠었는지, 이 작품은 공연장에서 만나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작품을 만들게 된 메이킹 필름을 유튜브에서 우연치 않은 기회에 찾을 수 있었는데, 이 얘기를 해볼까 한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




 20세기 뮤지컬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미셀 쇤버그'와 '캐머론 매킨토시'는 베트남 전쟁과 <나비부인(Madam Butterfly)> 스토리에 모티브를 얻어,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한 여인의 희생과 사랑을 담은 작품, <미스 사이공>을 기획한다.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가장 어렵고도 공들여야 했던 과정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Kim'이라는 여인을 연기할 주인공 배우를 찾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매킨토시 일행은 미국과 영국은 물론 아시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Kim' 역할에 꼭 맞는 여배우를 찾기 위해 오디션 투어를 시작한다.


'17~18세 가량의 나이, 작지만 강인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동양적 외모, 영어가 유창하며 풍부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뛰어난 노래실력'


 물론 이 조건을 만족하는 여배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이 방문하는 도시마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렸지만 매킨토시 일행이 만족할만한 여인은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러던 중, 필리핀 마닐라에서 그들이 찾는 'Kim'과 흡사한 두 소녀가 나타났다. 바로 Lea Salonga와 Monique Wilson. 문제는 그 둘 모두 Kim 역할을 하는데 큰 우열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왕관을 쓸 소녀는 오직 한 명뿐인데, 그 후보가 둘이라면 둘 중 하나는 버려져야 했다.


오디션에 참가 중인 Lea(우)와 Monique(좌) - 메이킹 영상에서 캡쳐



 결국 Lea와 Monique를 놓고 세 번의 걸친 오디션을 거친 끝에, <미스 사이공>의 제작진은 Lea를 선택한다. Monique는 극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쇼걸 '미미' 역할을 맡게 되고, Kim의 언더스터디(주연 배우가 사정이 있을 경우 대신 올라가는)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몇 년 간의 준비과정 끝에 1989년 9월, 런던에서 초연된 <미스 사이공>은 엄청난 성공을 기록하며, 이전에 존재하던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된다.

 물론, 초연 당시 18세에 불과했던 필리핀의 작은 소녀 Lea Salonga가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르며 유명세를 타게 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후 Lea의 커리어는 화려하게 빛이 났다. 굳이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와 <뮬란>의 'Reflection'은 모두 Lea의 목소리이다. 그리고 그녀는 런던 웨스트엔드에 진출하여 <레미제라블>과 같은 대작들의 주연을 꿰차며 십 수년간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Lea보다 불과 한 살 많았던, 그리고 Lea와 비슷한 재능을 가졌던 Monique는 <미스 사이공> 이후 알려진 행보가 거의 없다. 구글에 검색해도 나오는 정보가 거의 없는 것을 보니 뮤지컬 배우나 가수로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그녀의 오디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녀 역시 청아한 목소리와 단아한 외모로 얼마든 성공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세상은 단지 두 명의 Diva를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일인자의 성공 뒤에 그들의 재능 못지않은 수많은 이인자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만 그들이 우리 눈에 띄지 못한 것은, 우열을 가리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운 나쁘게 한 발짝 앞서 나간 일인자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 뿐, 그들의 실력과 노력이 모자란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일인자에게 열광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재능 또한 일인자의 그것만큼이나 귀하고 영롱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젠 중년의 원숙함을 가지고 있을 Monique.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래를 계속하고 있었다면 언젠가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숨겨진 보석을 사람들 앞에 다시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무대를 지켜보리라.


 The winner takes it all, but there must still be a place that the runner-up's can shine.


<미스 사이공> 메이킹 영상: 유튜브에서 'Miss Saigon..the making'으로 검색. 한국어 자막은 없으나 뮤지컬에 조금 관심 있다면 재밌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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