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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고
by litergrapher Apr 24. 2017

영화는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6년 전 개봉한 영화, <건축학 개론>에 대한 누군가의 평을 읽은 적 있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로맨스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는 오히려 남자들이 더 열광했다는 누군가의 영화평을 본 적이 있다. 이유인즉슨 이랬다.


 남자라면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경험한 미성숙한 연애 실패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 이불킥하게 하는 기억마저도 ‘추억’이라는 포장지로 잘 싸서 아련한 기억으로 훌륭하게 형상화시켰다는 것이다. 고백할 용기도 없으면서 쭈뼛거리고, 괜히 상대녀 행동 하나하나에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 상처받고 혼자 기뻐하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내 마음 아프게 한 ‘썅년’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기에.


 그런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나 역시 이 영화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거의 모든 작품에 지질한 '보통남자’를 등장시키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 역시 참 좋아한다. 물론 나는 주변의 매니아들처럼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냥 나같은 평범한 지질남을 보며 위안을 받으려는 욕구와 술자리에서 “나도 홍감독 영화는 좀 봐. 이번 작품은 이러이러했어."라고 조금이나마 아는 척하려는 마음때문에 난 그의 영화를 챙겨본다.




영화는 그들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다.


 어젯밤 아내와 함께 그의 새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불륜 논쟁베를린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두 가지 이슈가 영화를 보기 전 내 마음속에 ‘선입관’이라는 또아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몰입하지는 못했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하하>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 그의 이전의 작품들과 조금 다른 인상을 받았다. 마치 나비가 장자 되고, 장자가 나비 되는 ‘호접몽(胡蝶夢)’ 이야기처럼, 영화가 현실이고 현실이 영화 같은 그런 느낌. 마치 영화와 현실이 서로의 입과 코를 호흡기로 연결하여 숨을 쉬는 듯, 영화는 감독과 주연 배우 그 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또 미래였다.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당사자인 자신을 둘러싼 이 사랑이 축복받을 수도, 또 행복하게 끝날 수 없다는 것을 홍감독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의 시작은 유부남 영화감독과 사랑에 빠졌던 한 여배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끝내 사랑했던 유부남 감독은 돌아오지 않고, 해변에서 잠이든 여배우는 그와 재회해서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건네는 꿈을 꾼다.




 영화를 보면서,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러브 스토리가 살짝 연상되었다. 그들 역시 한쪽은 아내가 있는 중년의 조각가, 다른 한쪽은 젊은 그의 뮤즈였고,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고, 아름답게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이 러브 스토리는 그들이 죽고 난 뒤에야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재포장되었다. 꽤 낭만적이고 슬픈 사랑의 모습으로. 하지만 사랑했던 연인의 모습을 조각으로 빚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던 로댕과 달리 홍상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영화로 만들었고, 후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그 러브스토리를 직접 미화했다(심지어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작품이나 각본상이 아닌 여우주연상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는 참으로 영악한 감독인 셈이다.


 만약 둘이 머지않아 헤어지더라도 이 영화는 그들 곁에 남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어떤 관계로 남든 영화 속 그들의 모습은 2016년 당시의 열정을 간직한 채 영원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들에게 백미러에 비친 상(像)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 점점 멀어져 가는 '과거'이고, 그들이 헤어진 시점에서 겪게 될 ‘현재’이며, 둘만의 밀월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했던 지질한 남자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는다. 홍상수 자신일 주인공은 막판에 여배우의 꿈에서 아주 짧게 등장하여 술에 취해 책의 한 구절을 읽는 것으로 김민희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대신 조연으로 잠깐 등장한 정재영의 지질함이 나를 웃게 했다.


“선배는 결혼 안 해요? 저기 계신 분이랑 보통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아니야. 그냥 친구야 친구.”

“우리가 그냥 친구예요? 얼른 커피콩 골라요. 콩이 있어야 볶을 거 아니야!”


"선배는 결혼 안 해요? 저기 계신 분이랑 보통 사이는 아닌거 같은데."


 아무튼 홍상수, 참 영악한 감독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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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작 30대 직장인
낮엔 일하고, 밤엔 글을 씁니다.
주변에서 보고들은 것에 대한 생각을 끄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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