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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May 04. 2017

해마다 오월이면 생각나는 너.

소설 <소년이 온다>


#1

 늦봄의 훈풍이 부는 5월의 어느 퇴근길, 안국역 근처에서 지인을 만나고 걸어서 돌아가는 길에 삼청동 입구에 있는 풍문여고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OO회 졸업생 한강.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수상'

 맨부커상이 얼마만큼 권위 있는 상인지, 그 작가의 이름이 실명인지 필명 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이 소설의 작가인지도 그 순간은 몰랐다. 그저 3호선을 타면 집으로 가는 길이 꽤 복잡했기에 광화문까지 저녁 바람을 맞으며 걸어갔고, 지하철역 3번 출구와 연결된 교보문고에 잠시 들러 책 한 권을 사려다 이 책을 마주했다.

 아마 몇 년 전, 해외에 머물 때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신간 소개 기사에서 잠깐 마주쳤던 이 소설, <소년이 온다>. '한국에 돌아가면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만 하고 묻어두고 있다가 작가가 다른 작품으로 맨 부커상을 타고 유명세를 얻은 틈을 타 서가에 덩달아 꽂히게 된 이 소설.

 마침 오늘이 오월 며칠인 것도, 안국동에서 약속을 잡은 것도, 우연히 풍문여고 앞을 지나간 것도, 그리고 3호선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만춘의 봄바람을 맞으며 걸어 광화문까지 걸어온 것도, 가장 가까운 출구가 서점의 통로와 맞닿아 있었던 것도, 14쇄가 찍힐 때까지 기다려준 이 소설과 만나게 해주려는 우연들이었을까.




#2

 '월남 패망'이라고 하면 대개 우리는 사이공 미국 대사관에서 떠오르는 헬기를 떠올린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 모습은 여기까지다.

 자유진영에 협조했던 많은 남베트남인들이 대사관 앞에서 구출을 기다렸으나 그들은 끝끝내 탈출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아는 바는 별로 없다. 정치인 들와 기자들은 대사관에서 마지막 헬기가 떠오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오피셜리 전쟁이 끝났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자, 쇼는 모두 끝났으니 이제 돌아갑시다." 하지만 종전 후에 뒤 따라오는 이념의 폭력과 폐허 속 빈곤이라는 후폭풍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했던 민초들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아마 북베트남 점령군들에 의해 연행되고 모진 고문을 당한 후에 전재산을 몰수당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부이도이'라 불리는 미군과 베트남인 사이의 2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수용소에 갇혀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포화는 멈추었으나 전쟁의 응어리는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누가 비극이 끝났다고 한단 말인가.



 우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쉽게 잊고, 다시 알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은 새 시대를 열기 위해 과거의 아픔쯤은 감히 묻자고 말한다. 현대사의 풍파 속에 치유되지 않은 아픔은 현재 진행형인데도.


 1980년 5월 27일 아침,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함락한 그 시간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목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금남로의 분수는 다시 물을 머금고, 불통이던 시외전화는 연결되었으며, 시가지 곳곳에 물든 피들은 지워졌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그때 당시 참혹했던 과거의 순간들은 매스컴을 타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현재 진행형' 이야기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은 그 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그날 이후'를 대신 읊조린다.



 이 것은 광주항쟁 당시 실종된 친구를 찾으러 나갔다가 최후의 순간 도청에 남게 된 중학교 3학년 '동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살아있다면 이제 겨우 50대 초반일 동호. 친구를 찾겠다는 핑계로 상무관에서 누나들을 돕던 동호는 최후의 새벽, 발포가 시작되자 피하라는 말을 듣고 다른 고등학생 형들과 함께 캐비닛 안으로 몸을 숨긴다. 아침이 밝아 도청이 점령되자 두 손을 들고 형들과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본 계엄군 장교는


하하하하 야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이 씨발 빨갱이 새끼들. 그래도 살고는 싶은가 보지?


하며 그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그리고 그 비정한 순간에 도청에 남아있던, '동호'를 기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수피아여고 3학년으로 상무관에서 유족들은 안내하다 마지막 날 저녁 귀가한 '은숙'의 1985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고향에 내려온 사이 항쟁에 휘말려 도청에서 생포된 '진수'의 1990년.
•시내 양장점에서 일하다 최후의 새벽, 가두방송에 나선 '선주'의 2000년.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찾아 마지막 날 저녁 도청에 찾아갔지만 울며 되돌아와야 했던 동호 어머니의 2010년.
•그리고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광주에 갔던, 그곳이 고향인 작가의 2013년.




 #3

 임진왜란 때 희생된 조선인은 당시 전체 인구의 70%. 정말 왜군의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죽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사는 우리는 한국전쟁보다 덜 비극적으로 느낀다. 오늘을 사는 나와 밀접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곳에서 억울하게 왜놈의 조총을 맞아 스러지고 코와 귀가 베인 사람들의 원한을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우리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보상과 사과를 요청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국민 중 누구도 임진왜란으로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에는 암묵적 공소시효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20세기의 일을 잊을 것이다. 세월호 같은 일은 우리 자식 세대에서도 언급되지 않을 것이고, 독재정권 때 빈번하던 공안사건들이나 군부정권이 일으킨 수많은 인권 침해 사례는 백 년 후 역사교과서에 등장하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을 시간 위에 쌓아가고, 그렇게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현대사를 우리의 후손들은 기억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제 침략을, 민족반역자를, 종군위안부를, 한국전쟁을, 남북 분단을, 독재정치를, 4.19를, 5.18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희생되고 아파했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아야한다. 근미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외면하고 바로잡지 않는다면 역사는 쉽게 과오를 용서하고, 또 같은 시련을 용납하게 된다.

 잊히는 것. 그것이 과오를 저지른 이들이 바라는 것이오, 숭고하고 억울한 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우리가 이번 오월,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작가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지만 바로 이 작품 <소년이 온다>로 지난 정권에 의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이 소설을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정치적 이해관계로 역사를 숨기려 하고, 이를 밝히려 하는 작가의 양심을 탄압하는 부정한 정권을 다시는 용납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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