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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May 03. 2017

읽고, 쓰고, 생각하라

머리 속엔 똥만 차 가지고


 중학교 3학년 때 악명 높은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국사 선생님이었는데 수업 중 거슬리면 학생들의 뺨을 때리고, 교실에 들어오면,


읽고, 쓰고, 생각하라


라는 말만 하고 교탁 앞에 우두커니 서서 45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교실을 나가시던.

 그냥 이미 60이 가까운 연로한 선생님이 요즘 교과서를 잘 몰라 수업을 안 하시는 줄 알았다. 그렇게 떠들면 뺨 맞을까 봐 조용히 앉아있거나 다른 공부를 하고,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그냥 교과서만 외우거나 다른 선생님이 가르치는 반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서 시험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다 참다못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교장선생님과 3학년 반장들과의 티 타임 시간에 이 이슈를 제기했고, 감사하게도 우리의 목소리는 국사 선생님께 전달되었다.

 그다음 주,

 약간은 독재 괴수를 물리친 민주투사의 승리감으로,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 늙고 능력 없는 스승아, 어디 얼마나 가르치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의기양양하게 자리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교실로 들어온 그가 수업을 시작했다.

 칠판 왼쪽 위부터 빼곡히 판서를 하며 교과서 한 번 보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감탄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30년 국사 교사의 내공이 느껴지는 수업이었다.

 아이컨택도 질문도 없었다. 그렇게 선생님 혼자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흔하디 흔한 90년대 수업이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 시간 전에 느꼈던 알량한 승리감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왠지 모를 씁쓸함이 몰려왔다. 평범한 수업을 듣고 싶다는 소망이 이루어졌는데 45분 내내 무언가 쏟아내는 그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결국 그는 그렇게 학년말까지 영혼 없는 수업을 이어갔다. 스승이라기보다는 매뉴얼에 의존해 주어진 의무만 수행하는 공무원처럼.




 시간은 흘러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의 공부는 중고등학생 때와 달랐다. 물론 몇몇 나이 든 교수님들은 전공서적과 강의자료를 달달 외우는 강의를 지향하였지만 많은 수업에서 학습자들의 참여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예컨대 전공서적의 챕터를 나누어 수강생들이 돌아가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예시를 찾고, 발제한 서너 개의 토의주제로 다른 수강생들과 토론하고, 교수님은 학생들의 토론 내용에 개입하여 코멘트를 달아 지도하는 이런 수업들.

 중3으로부터 꼭 열 살을 더 먹어 대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타과생에게도 악명 높은 한 강의를 수강했다. 초반 수강생 셋 중에 둘은 중간에 포기한다고 소문난 수업.

 사각형의 무표정 얼굴, 근육으로 터질 것 같은 흰 와이셔츠에 멜빵 정장 차림의 조폭 같은 교수님. 주 당 책 서너 권은 읽어야 겨우 따라갈 듯 말듯한 토론형 수업. 워드 100페이지는 써야 통과할 수 있는 과제를 안 해오거나 뜬구름 잡는 말에는 인격모독 수준의 독설과 함께 남학생의 경우 가끔씩 주먹질까지.

 힘들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던 그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 학기 내내 주야장천 강조했던 것은,


생각하라(사회현상에 숨겨진 뒷단의 원인과 구성원들의 욕망들을). 그러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그걸 계속하면 분명히 실력이 는다.


 <경영전략>이라는 타이틀을 단 그 수업에서 배운건 실제 회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전략 수립이 아니었다. 주요한 의사결정이 이성적인 판단과 데이터의 뒷받침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닌,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한 학기 동안 배웠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회사에 들어와 보니 모든 의사결정이 합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말단 직원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만큼 인간 개개인은 겁 많고 나약했지만 조직은 크고 무서웠고, 지켜야 할 가치는 저마다 달랐다.

 하물며 정치라고 다를까, 외교라고 다를까, 법 집행이라고 다를까.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역사를 만들진대 수백 년이 지난 역사적 사건이라고 다를까.

 최근에는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다양한 역사적 시각을 재조명하는 책도, TV 프로그램도, 인터넷 콘텐츠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인류 문명과 의식의 진화과정을 탐구하기보다 그냥 한 개의 딱딱한 암기과목으로 치부되고 있는 한국의 역사교육.

 연산군의 폭정으로 중종반정이 일어났다지만 왜 연산군이 폭군이 되었는지, 을미사변 때 일본의 자객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지만 조선 내에는 그 협조 세력이 없었는지,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시작되었다는데 그 시작은 무엇이었는지 교과서의 텍스트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역사란 결국 기록에 근거한 것이며 수많은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제한된 사료로 사건의 원인을 추론하는 데에는 여러 접근법이 있을 수 있고,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에 대해 서로가 유연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년 전 나의 역사 선생님도 교편을 잡으며 가치 있는 역사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사회현상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당시 제자들이 이런 역사 학습을 해주길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지 이제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읽고: 주어진 사료를 통해 팩트를 이해하고
생각하고: 현상 뒤에 일어난 인과관계를 추론하고
쓰라: 생각을 정리해보라.


 다만 이런 수업을 해본 적 없었던 열여섯 살 중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의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첫 수업에서 '역사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가이드를 주고 과제와 강의를 적절히 섞었다면 어쩌면 의미 있는 역사수업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선생님께서 우리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가끔 잔소리를 하실 때나 화가 나서 교실을 나설 때 하셨던 독설.


머리 속엔 똥만 차 가지고.


 초임 교사 시절,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활발히 수업에 참여해주었던 70년대 옛 제자들과 우릴 비교하며 긴 잔소리를 하기엔 당신 스스로도 너무 속 좁아 보이셨던 것일까. 아마도 주입식 교육이 싫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이러한 교육 방식에서 탈출하려는 의지조차 없었던 우리를 탓하셨던 거겠지.


읽고, 쓰고, 생각하라.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교과서를 통해 우리가 각자 자신들이 이해한 역사에 대해 뭐라도 생각을 정리해 말해주길 1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무르고 서툰 생각이지만 어린 제자들이 손을 들고 스스로 퍼즐을 맞춰가며 자신에게 질문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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