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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un 04. 2017

멍멍이, 착하지 ep.2

안녕, 멍멍이


(ep.1에서 이어짐)


 내가 근무하던 부대는 외관이 허술했다. 산 중에 세워진 부대라 벽돌로 울타리를 세울 수 없었고. 인삼밭에서 볼 수 있는 검은 비닐 천이 울타리를 대신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비닐 천을 넘어 부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경계 차원에서 일부러 개를 키운다고 주임원사님이 말씀해 주셨다.

 어느덧 계절이 세 번 바뀌어 가을이 되었다. 엄 병장은 그 사이에 전역했고, 발리는 성견이 되자마자 새끼를 뱄다. 아마 부대 내 수컷 중에 한 놈이 범인이었을 것이다. 산속의 겨울은 빨리 왔고, 10월 중순이었지만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했다. 새끼들을 낳자마자 우리는 발리와 새끼들을 보일러실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발리가 보일러실에 있다는 걸 까맣게 잊은 채 부대 전체는 사단 본부로 동원훈련을 떠났다.

 훈련 중에 나는 아팠다. 결국 일주일 간 이어지는 훈련 3일 차에 부상당한 군수과 고참 하나와 부대로 복귀했다. 부대에는 취사병 한 명과 상황병 둘, 그리고 부상당한 고참과 전역 대기 중인 말년 병장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뭐든 해야 했다. 저녁에 자기 전 난방을 위해 보일러실에 간 나는 그 안에서 낑낑대는 소리를 들었다.

 맙소사. 발리가 새끼들과 갇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발리의 앞발이 내 허벅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두 발로 선 채로 내 허벅지를 비비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발리의 몸은 비쩍 말라 있었고, 새끼들의 움직임도 둔해 보였다. 발리는 빛도 들어오지 않는 보일러 실에서 그렇게 사흘 동안 새끼들과 갇혀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내가 중간에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발리와 새끼들은 보일러실 안에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급한 대로 취사장에서 밥과 반찬들을 꺼내 발리를 먹였다. 젖도 말라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미가 먼저 기력을 회복해야 새끼들도 살릴 수 있을테니. 하지만 끝내 네 마리 새끼 중 두 마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다행히 나머지 둘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는데, 부대 내 강아지 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얼마 후 다른 곳에 입양 보냈다.




 발리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랐기 때문에 부대원 모두가 귀여워했다. 부대에서 키우는 개라 눈치가 빨라서, 주말에 깨끗한 전투복을 입고 위병소로 내려가면 발리를 위시해서 모든 개들이 따라 내려왔다. 면회인 걸 직감적으로 알고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했겠지. 특히 발리는 위병소 안까지 따라 들어와 테이블 옆에 두 앞발을 모으고 가지런히 앉아있곤 했는데, 가끔 눈이 마주치면 음식을 던져주었고, 발리는 받아서 맛있게 먹었다. 조르지도 않고, 면회객에게 짖어대지도 않았다. 그렇게 개를 싫어하던 엄마도,

 "개가 참 순하네.”

 라며 발리의 심성을 칭찬해 주셨다.

 모든 부대원들에게 예쁨 받던 발리의 삶이 고단해진 것은 대대장이 바뀌면서였다. 새 대대장은 자기가 집에서 키우던 큰 암컷 진돗개 한 마리(이름: 진백이)를 부대에 데려와 당번병(대대장의 비서)에게 키우도록 지시했다. 집에서만 자라던 개여서 너른 부대 안에서 한동안 신나게 뛰어다니던 이 녀석은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원래 있던 개들을 공격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특히 수컷 개들에게 인기가 많고 체구가 작은 발리가 주 타깃이었다.


깨갱깽깽!!!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진백이가 발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가 진백이를 쫓아내면 이미 발리의 얼굴과 허벅지는 피투성이가 된 뒤였다. 그때 상처로 발리는 한동안 다리를 절었는데, 결국 참다못한 나는 발리를 동기 한 놈과 함께 대대장님 몰래 진백이를 유인해서 몽둥이로 때렸다. 그 날 이후 진백이는 나를 보면 크게 짖으며 발광을 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주임원사님은 그 모습을 보고,

 “야, 니가 큰 덩치에 저녁마다 뛰어댕겨서(당시 나는 부대 내에 저녁에 조깅을 하고 있었음) 개가 놀라서 저런가 보다잉.”

 라고 하셨는데, 나는 “네, 그런가 봅니다. 허허.” 하면서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말귀 못 알아듣는 짐승이 체벌로 교정될 리 만무했다. 진백이는 여전히 발리를 괴롭혔고, 나 역시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신경전을 벌였다. 그런데 내가 진백이에게 린치를 가한 날, 아마도 목격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얘기는 결국 당번병을 통해 주임원사님의 귀에 들어갔고, 주임원사님은 전역을 앞둔 나와 동기를 불러 혼을 내는 대신에 모든 부대원을 모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 부대 내에서 개들 싸우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쟈? 나도 요즘 개 짖는 소리에 시끄러워 일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개장수 불러서 몇 마리 팔기로 했으니께 그리들 알어라잉?”

 다음 날, 오토바이에 철창 케이지를 달고 정말 평생 개만 사고팔았을 것 같이 생긴 개장수 아저씨가 부대에 도착했다. 주임원사님의 명령에 본부중대 병사 몇 명이 부대의 개들을 데려왔고, 그들은 차례차례 철창 안에 실렸다. 물론, 대대장님이 데려온 진백이와 값나가는 말라뮤트, 그리고 몇몇 경비용 수컷 몇 마리는 예외였다. 개장수가 주임원사님과 흥정하러 간 사이에 나는 오토바이로 다가갔다. 다른 개들과 좁은 케이지에 갇힌 발리는 체념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 수개월 전 막사 밖으로 쫓겨나며 유리문 안을 쳐다보던 원망의 눈빛도, 보일러실에서 밥 좀 달라며 애원하던 간절한 눈빛도 아닌 그냥 살아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눈빛이었다.

 이윽고 값을 치르고 나온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리고, 부대 진입로까지 뻗은 내리막길을 달리자 케이지에 갇힌 개들이 구슬프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나는 발리가 사라진 쪽을 계속 쳐다봤다. 슬펐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내가 더 미웠던, 찬바람 부는 2005년 11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ep.3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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