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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un 04. 2017

멍멍이, 착하지 ep.1

발리에서 생긴 일


 국민학교 2학년 때쯤이었나. 옆 집 상수네는 개를 많이 키웠다. 특히 ‘촐랑이’라고 불리는 잡종견은 목줄을 매지 않고 풀어두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도 때도 없이 새끼를 뱄다. 그 조그만 체구에 어떻게 강아지들이 들어갔는지, 한 번 새끼를 낳으면 아홉 마리, 열 마리. 그 많은 개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상수 어머니는 개들을 분양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개를 좋아했다. 특히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에 살았기 때문에 이웃 집에서도 개를 한 두 마리는 꼭 키웠는데, 개가 없는 집은 거의 우리집뿐이었다. 엄마가 개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촐랑이가 무려 열 한 마리의 새끼를 낳았던 날, 나는 상수네 집 지하실에서 그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보았다. 한 배에서 태어나도 색깔은 어떻게 그리 다른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촐랑이의 품을 파고 들어 꼬물꼬물 젖을 무는 새끼들을 보고 나는 큰맘 먹고 상수에게 한 마리 달라고 했다.

 “근데 너네 엄마 강아지 싫어하지 않아?”

 상수는 반신반의하면서 그 중 젖소처럼 얼룩덜룩한 강아지 한 마리를 내주었다. 강아지는 내 손바닥 위에서 낑낑거렸다.


당장 갖다줘!!


 퇴근하고 돌아오신 엄마는 거실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소리를 빽 질렀다. 나는 울며불며 내가 밥도 주고 잘 키우겠다고 애원했지만 소용 없었다. 방도 혼자 제대로 못치우면서 강아지는 어떻게 키우냐는 잔소리부터 털갈이 할 때 털 날리는 것까지 엄마는 싫다고 했다. 강아지가 그렇게 좋으면 강아지랑 나가 살라는 말에 결국 하는 수 없이 울면서 강아지를 제자리에 도로 갖다 놓았다. 상수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아지는 계속 찡찡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시간 동안 어미 젖을 못 먹어서 배고파서 그랬던 것이었을 텐데, 나는 그저 이 녀석도 나랑 헤어져서 슬픈가보다 했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TV에서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한창이었다. 고참들은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당직사관 몰래 TV를 켜고 이등병들을 시켜 망을 보게 했다. 조인성이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리던 날, 부대에서 키우던 개가 새끼를 두 마리 낳았는데, 한 마리는 태어나자마자 저 세상으로 가고, 나머지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똥개긴 했지만 흰털에 갈색 무늬가 있는 귀여운 암컷 강아지였다. 고참들은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이름을 따 이 녀석의 이름을 ‘발리’라고 지었다.

 ‘발리’는 생김새가 너무 귀여워서 모두들 좋아했다. 특히 옆 중대의 엄 병장이 이 녀석을 예뻐해서 사실상 발리는 엄 병장의 내무실에서 길러졌다. 밥도 내무실에서 먹고, 잠도 침상 위에서 잤다. 가끔 불침번을 서다 그 내무실에 들어서면 옆으로 몸을 뉘인 채 코를 골며 새근새근 자는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강아지의 성장은 하루가 달랐다. 불과 한 뼘 크기였던 몸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여름이 되면서 털갈이도 시작했다. 그때부터 발리의 위치 역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침상에서 내무실 바닥으로, 그러다가 복도로, 그리고 결국 막사 밖으로. 가끔 발리는 엄 병장의 내무실 문에 앞발을 대고 낑낑거렸다. “예전처럼 날 예뻐해줘. 포근한 모포 위에서 재워줘.”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불침번을 서던 이등병 나는 발리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막사 바깥에 옮겨 놓은 뒤,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러면 발리는 서운한 듯 유리문 밖에서 안을 한참 쳐다보다가 밤 공기 사이로 사라져갔다.


(ep.2로 이어짐)


보고싶은 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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