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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un 30. 2017

현대사, 한 사람 인생의 결론

피부로 부대낀 역사는 책으로 배운 역사보다 강하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9년.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한 주말 드라마를 기억한다. 제목은 <장미와 콩나물>.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혜자-최진실 고부의 에피소드를 주축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던 걸 생각해보면 며느리 최진실을 '장미'로, 시어머니 김혜자를 '콩나물'로 상징한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한참 고부갈등을 일으키던 두 사람이 각자의 남편들에게 구박을 받고 각자의 신세한탄을 하며 보듬어주던 모습이 그려졌다.  


 한참 훈훈한 분위기로 가다가 김혜자가 던진 한마디.


 "내가 그놈의 4.19 난리통만 아니었으면 우리 아버지 장사도 안 망하고 이놈의 영감탱이한테 시집 안 와도 됐을 텐데, 아이고 내 팔자야!"


 그 와중에 똑소리 나는 우리의 며느리 최진실은 눈치 없이 이런 멘트를 날려서 시청자들을 뜨악하게 하는데...


 "어머님, 4.19는 우리나라 시민들이 우리 손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그러자 김혜자가 '너 나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다고 무시하냐'라고 발끈하며 훈훈하던 분위기는 급격하게 얼어붙었고, 드라마 속 때아닌 역사 논쟁으로 다시 고부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의 가치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스무 살 때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이해하면 된다."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나는 월드컵을 개최하는 발전된 우리나라를 보았고, 우리 할머니는 스무 살이던 시절 전쟁을 겪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세상의 모습은 기록으로 접하고 말로 들어도 체감하기 힘들다.


 산업화 세력을 보수, 민주화 세력을 진보라고 할 경우 대한민국 국민은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 확연하게 나뉘어 있다. 이것은 정치적 분립을 넘어서는 문화적/철학적 대립을 내포한다. 삶에 임하는 자세,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견해,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 등 모든 면에서 두 진영은 서로 다르다.

 물론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한 사회에 동시에 존재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과 지향의 차이가 크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정치적/문화적 변화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생긴 현상이다. 서유럽에서는 300여 년에 걸쳐 진행된 변화가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50년 동안에 일어났다. 그래서 절충하기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큰 차이가 세대 대립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단순한 정당 사이의 권력다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의 투쟁이었고, 서로 다른 문화의 갈등이었으며, 서로 다른 역사인식의 충돌이었다.

-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中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라는 책에서 2012년의 대통령 선거를 이 시대의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인생을 대표하는 현대사에 표를 던졌고 보았다. 한쪽은 산업화의 현대사를 긍정하는 보수정당이었고 다른 한쪽은 민주화의 역사를 긍정하는 진보정당이었다. 모든 내용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러워하는 역사관을 갖는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을 평가할 때, 이제 우리는 미국이 동남아시아에서의 자본주의 패권을 위해 일으킨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최근 SNS에 많이 재조명되는 것처럼 전쟁 중 국군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도 우리 현대사의 치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지금의 70대 할아버지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들이 스무 살을 보냈던 60년대는 세계 최빈국의 조국이 계획경제를 통해 성장의 조짐을 보였던 때였고, 머나먼 열대의 땅에서 목숨 바쳐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조국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믿는 그들에게 "당신은 더러운 전쟁에 가담한 학살자야!"라며 비난한다면, 그래서 현 정부가 단지 외화벌이를 위해 당시 한국의 젊은이를 파병했다고 공식 인정한다면, 명분 없는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고엽제를 맞아 장애인이 돼버린 그들의 인생은 무엇이고, 조국은 무엇일까.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인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에 맞는 역사관을 갖고 그것을 지지해주는 정치인을 환영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이지만, 우리가 읽는 역사도 그것을 가치 있는 사실로 추려낸 누군가의 '주관적' 사관이고, <장미와 콩나물>의 김혜자와 최진실이 바라본 4.19 혁명이 각기 다르듯, 짧은 시간에 탈 많은 현대사를 지나쳐온 2017년의 대한민국 각 세대가 기억하는 역사도 다를 것이다.




 예컨대,


 나의 외할머니(1921년생)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할 당시 이미 기혼이었고 딸(큰 이모)도 있었다. 덕분에 가족들 누구 하나도 징병에 끌려가지 않았다. 일제에 공출로 쌀을 빼앗기고 산에 올라가 솔방울을 줍는 노역에 동원됐지만 철도가 들어서고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전에 "일본이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라고 말씀하셨다.


 반면, 나의 친할머니(1933년생)는 일본 패망 전 어린 시절에 강제로 새끼를 꼬는 노역을 하셨고, 일본 순사가 할당량을 못 채웠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어머니를 땅바닥에 메다 꼳은 기억을 갖고 계시다. 그래서 일본을 아주 많이 싫어하신다. 그리고, 1.4 후퇴 당시 할머니의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큰 복숭아 밭이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 의해 쑥대밭이 된 탓에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매우 보수적이시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분 다 학교를 다니신 적이 없기 때문에 <장미와 콩나물>의 김혜자처럼 경험으로만 역사를 인식하고 계시(셨)다. 역사는 결국 기억의 기록이고,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관은 교육에 의한 역사관보다 강하다. 그래서 4.19에 대해 책으로 배운 최진실의 반박에 김혜자가 그렇게 화를 냈는지도 모른다.




 빽빽한 지하철이 싫어 종로 3가에서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일이 잦은 요즘. 탑골공원 앞을 지날 때면 할아버지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삼삼오오 갖가지 '애국'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흔히 우리 젊은 세대가 말하는 '수구 꼴통 할배'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버리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현대사는 어떤 모습이고, 그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그들 자신의 역사는 무엇이길래 더운 날씨에 저기에 서서 저러고 계실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급격한 현대사의 변화 속에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세대전쟁의 양상을 띤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 아닌, 서로가 살아온 시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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