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tergrapher Jul 17. 2017

보통의 존재

우린 결코 남보다 특별하지 않다.

 

 최근, 지인 한 명이 운영하던 식당을 폐업했다.


 나름 주중에는 직장인들이 많이 몰리고, 주말에는 나들이객이 모여드는 시내 유명 부도심에 위치했지만, 입주민이 아니면 찾기 어려운 레지던스 건물 지하에 오픈한 것이 흠이었다. 개업 당시에는


 “인테리어도 예쁘게 신경 쓰고, 메뉴도 좋으니까 입소문 타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하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현실은 냉랭했다. 물론 식당의 분위기와 서비스는 훌륭했고, 맛과 양도 가격 대비 좋았기 때문에 나는 가끔 아내와 그곳에 들렀다. 하지만 주중이든 주말이든 들를 때마다 가게는 한산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가게에서 꼭 저녁을 먹어야겠어.’ 라며 차를 몰고 찾아오지 않는 한 찾기 쉽지 않은 가게의 위치. 결국 그는 많은 손해를 보고 가게 문을 닫았다.




 내가 근무하는 종로 역시 사무실 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커피숍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흔히 말하는 ‘맛집’들은 물론이거니와 맛은 그저 그런 식당들도 ‘접근성’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로 붐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유독 자주 간판이 바뀌는 집들도 있다. 장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정리하고 다른 업종으로 갈아타거나 매매하는 경우다. 사정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 식당들의 가성비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먹는장사를 하는데 가장 위험한 핸디캡을 감수하고도 가게를 열었다. 2층, 혹은 그보다 높이 있거나, 아니면 식당가가 아닌 다른 구역에 있거나.


 회사 근처 식당 주인들도 처음에는 자신감에 넘쳤을 것이다. 콘셉트도 나름 있었고, 젊고 친절한 직원들도 썼다.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런치 메뉴부터 저녁에 들르는 손님들을 위한 주안상까지 차림 구성도 알찼다. 매일 아침 지하철역과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쿠폰도 배포하는 노력을 들였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단 하나. 그들은 남들과 비교하여 특별하지 않았다.


 물론, 그 식당들이 제공하는 식사와 서비스는 훌륭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식당은 사무실 근처 식당가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건너편 블록 2층에 있으면 어때. 맛있고 친절하면 사람들이 찾아올 거고, 곧 자리 잡힐 거야.”라는 막연히 낙관적인 태도가 그들을 실패로 이끌었던 셈이다.


 그들은 전 주인이 왜 폐업하고 가게를 넘겨야 했는지 분명 알았을 것이다.


 나는 달라. 전 주인보다 더 좋은 콘셉트와 맛있는 메뉴로 성공할 거야.


 글쎄. 전 주인도 가게를 열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독일의 경제학자 하노 벡(Hanno Beck)은 자신의 저서인 <부자들의 생각법>이라는 책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만은 특별하다.’는 생각 때문에 투자나 사업에 실패한다고 밝혔다.


… 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는 ‘통제의 환상’이라고 한다. 통제의 환상은 사람들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거나 외부환경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즉 사람들은 조수석에 앉았으면서도 조종석에 앉았다고 믿고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동전 던지기 게임에서 어떤 면이 나올지 자기 능력으로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증권 시장에서는 ‘내 능력으로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쉽게 생각한다. 주변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쉽게 거래하며 손해를 본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으며, 성실함과 영리함 그리고 전문 지식이 있으면 실패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능력에 대해 과도하게 낙관적이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어디서든 중간 이상은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남들처럼 실패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평균을 이해하면 이것이 착각임을 알 수 있다.

 운전자들에게 설문을 했는데, 약 80%의 운전자가 자기 운전 실력을 평균 이상으로 생각했다. 펀드 매니저들 역시 마찬가지다. 클라인보르트 벤슨 투자 은행이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74%가 자신의 일 처리 능력이 중상위권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한 펀드 매니저가 말했다.

 “다들 자기가 남들보다 잘한다고 우기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나는 진짜예요!”


 벡은 몇 가지 추가적인 설문 조사 결과를 덧붙였다.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동료 학생들에 비해 더 높은 연봉에 더 빠른 승진을 할 거라고 답했고, 많은 사람들이 동전 던지기 실험에서 자기가 맞출 확률이 평균 이상일 것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고, 남들보다 행운이 따를 거라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대한 객관적 검토를 충분히 하지 않고 사업과 투자에 뛰어드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근거가 없음에도 내가 오늘 산 주식은 오를 것 같고, 왠지 이번 시험에서 찍은 문제들은 정답일 것 같다. 나는 30대 후반인데 아직 20대 여자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내가 개업한 가게는 위치는 좀 별로지만 아이템이 좋으니 성공할 것 같다. 몇 가지 분명한 호재가 있으니, 사소한 부정적인 조건쯤이야 자신의 노력과 타고난 행운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바로 우리 인간이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평균에서 멀지 않은 능력과 운을 가졌다. 나만이 특별할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행운은 나에게만 더 따를 것이라는 헛된 희망은 때로는 우리를 잘못된 선택으로 인도한다. 실패한 뒤에는 이미 많은 자원과 노력을 낭비한 후다. 그제서야 깨닫기에는 너무 값비싼 교훈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현대사, 한 사람 인생의 결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