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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Aug 08. 2017

10점 만점에 9점

평점이 좀 후한듯 하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지난 토요일에 기대했던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이틀 동안 뭔가 마음속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걸 주말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시원하게 쏟아낼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쉽지 않았다. 영화가 채워주지 못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9점대의 평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9점대의 평점은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보통 ‘씨네큐브’나 ‘아트하우스 모모’에 걸리는 개성 뚜렷한 감독들의 ‘웰메이드 장편영화’가 9점을 받는다.). 아마도 이 9점의 의미는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폭발력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현대사의 사건을 송강호라는 명배우를 통해 풀어낸 훌륭한 스토리’ 10점. ‘좌빨 공산주의 영화’ 1점. 전자 90%, 후자 10%, 평균값은 9점으로 수렴. 평점에 달린 코멘트도 영화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한 마디로, 이 영화를 둘러싼 평가는 ‘소재 빨’, 일주일 앞서 개봉한 <군함도> 역시 (보지는 않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을 듯하다.




 물론, 분명 훌륭한 점도 많았던 영화였다.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의 광주 모습을 이토록 실감 나게 재연한 픽션 영상물은 이전에는 없었다. 대부분이 ‘5월 21일 도청 앞에서의 발포’와 ‘27일 새벽 도청 진압 작전’ 이 두 사건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반면, 이 영화는 독일 기자가 체류한 2박 3일 동안의 광주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광주역 앞에서 온 시민들이 민주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아 흡사 ‘대동제’와 같은 모습으로 집회를 벌이던 장면과, 택시 기사들에게 무료로 기름을 나눠주던 주유소들. 계엄군의 통제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벌어진 이른바 ‘해방 광주’의 모습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80년 5월 광주의 모습이다. 더불어, MBC 방화 사건과 광주 지역 내에서 자행된 각종 언론 탄압, 적십자 병원의 비극적 상황 등 ‘기자’라는 실제 인물을 통해 ‘학살의 현장’뿐 아니라 당시의 다양한 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 中

 하지만 연출력과 시나리오의 힘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이 영화에서 10년 전 같은 소재로 개봉한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나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감상을 가지고 영화관을 나왔다(“전두환 이 개새끼 ㅆ새끼!!”).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속에서 대중들의 알아야 할 실화 하나를 끌고 왔다는 것은 분명 흥미롭고 색다른 관전 포인트를 선사해 주었지만, 사건이 아닌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김이 빠지는 부분들이 몇 가지 있었다.


1. 영웅담으로 끌어가기 위한 인위적 설정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을 사실로 채우라고 감독에게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광주 민주화 항쟁’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주요 사건들에 대한 왜곡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5월 21일 오후에 도청에서 발포가 있은 후, 쓰러진 부상자들에 대한 확인 사살과, 그들을 부축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조준 사격은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들이 달려 나와 부상자들을 구출하고 나오는 장면은 사실과 픽션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실제 사건을 서술하는 장면에서 분노와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던 관람객에게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장면으로의 전환은 맥이 풀리게 만들었다.

마지막 광주 탈출 추격 씬(예고편 영상에서 캡쳐)

 마지막에 광주를 빠져나가는 추격 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실을 알리기 위한 희생’과 같은 주제를 부각하고, ‘목숨을 걸고 한 탈출’의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삽입한 장면이라고는 하지만, 광주에서의 일을 매듭짓고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레이스’와 ‘추격’이라는 극히 진부한 방식을 택한 것은 여타 오락영화의 클라이맥스와 다르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좀 더 다른 방식을 풀어갈 고민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2. 아쉬웠던 ‘선’과 ‘악’의 구도

 이 영화에서는 ‘악’으로 대표되는 인물 한 사람 등장한다. 5월 20일 시위에서 사복 경찰로 등장하여 시종일관 기자를 쫓는 인물이다.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시위대’와 ‘정의로운 사람들’에 대한 ‘절대 악인’으로 묘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전개 과정에서 장발장의 뒤를 쫓는 자베르 형사처럼 시종일관 기자와 택시를 쫓게 되고, 결국 이러한 개인 간의 갈등 구도는 마지막 추격씬에 대한 합리적인 내러티브까지 제공한다.

악의 공권력을 대표하는 영화 속 사복경찰

하지만, 이 영화가 개인의 경험이 아닌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포괄적인 주제의식까지 커버하려면 오히려 특정 인물을 설정하여 악역을 맡긴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이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여 영화를 보는 이상, 주인공이 ‘악인’ 한 사람에 의해 고통받고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면, 관객들 역시 그에 대한 분노로 진부한 ‘선인’과 ‘악인’의 구도에 빠져들게 한다. 80년 그 해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의 원인은 거대 공권력과 잘못된 권력욕에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사복 경찰이 상징하는 ‘악’으로 단순화하여 영화가 말하려는 ‘역사의 부당함’을 등장인물 간의 갈등 구조 안에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복 경찰과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대신, 실제 취재 과정에서 있을 법한 난항과 그 어려움 속에서도 카메라에 담았던 비인간적인 인권유린의 현장을 좀 더 재연해 주었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영화일 뿐 진지 빨지 말라.”

 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내가 위에 밝힌 포인트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좋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영화를 중간중간 가볍게 풀어내어 좋았다.’는 평을 여러 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 소재’를 삼았다면, 그에 맞는 진중함은 필요하고 본다. 더군다나 <명량>처럼 500년 전 일을 다룬 것도 아니고 아직도 사건에 대해 밝혀져야 할 진실이 아직도 너무나 많은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광주 민주화 항쟁’과 관련된 영화와 다른 예술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영화처럼 알려지지 않은 개인들의 영웅담이 소개될 수도 있고, 아니면 강풀 원작의 <26년>처럼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보여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조명하든 그 무거운 주제에 걸맞게 스토리 전개와 표현에 조금 더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오락영화에서 볼법한 기적 같은 영웅담과 속도전, 그리고 히어로물에나 나올 것 같은 선악의 대결은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소재에 잘 어울린다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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