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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Jan 10. 2020

아빠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조건 없는 사랑을 하라'는 신의 선물


 어제저녁, 딸을 재우고 식탁에 앉아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일기를 쓰는데 아내가 문득 물었다.


 “오빠, 엄마 아빠가 되면 아이한테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잖아. 어디서 이런 마음이 생겨나는 걸까?”


 아내는 임신기간 동안 몸무게가 전혀 늘지 않을 정도로 출산하는 날까지 입덧으로 고생했다. 그 고생 때문에 그랬는지 막달까지도 “모성애가 안 생기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던 그녀였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조건 없는 사랑을 해보라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별생각 없이 답한 거였지만, 다시 곱씹어 보니 그럴듯했다.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신도 버린 사람들을 제외하면, 부모가 되면 누구나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다. 남을 위해 선행 한 번 하지 않고 살더라도, 부모는 본능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다.


 친구의 추천으로 주호민 작가의 ‘셋이서 쑥’이라는 만화를 읽었다. 작가가 아들을 낳고 1년 간 겪은 육아일기를 만화 형식으로 풀어 출판한 책이다. 작가의 데뷔작 ‘짬(작가의 군생활 경험을 자전적으로 그린 작품)’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자기의 경험에서 에피소드를 잘 뽑아내는 재능이 있다.



 책 내용의 대부분은 육아를 하다 겪게 되는 시행착오나 노하우가 차지하지만, 가끔 아빠가 된 후 달라진 작가 자신의 모습과 생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육아 용품이나 장난감에 눈길이 가는 것처럼, 무심코 지나치던 아동 관련 뉴스도 자식이 내 품에 들어온 이후로는 달리 보인다. 마치 인생이 아빠가 되기 전과 그 후로 나뉜 것처럼.




 “모성애가 안 생기면 어쩌지?”


 아내가 이 말을 할 때, 사실 나도 두려웠다. “부성애가 안 생기면 어쩌지?” 나 역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부성애’라는 감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가 책에서 고백한 것처럼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부성애가 생겨났다. 비록 모성애보다 한참 모자란 사랑이겠지만, 이렇게 예쁜 아이가 우리한테 왔다는 사실이 매일 감사할 정도로 지금은 딸에 대한 사랑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다.


14화 <비로소 보이는 것> 中


 부모가 되기 전에는 그랬다. 마치 중학교를 졸업하면 별생각 없이 고등학교에 가는 것처럼, 아기를 갖는 것도 결혼하면 자연히 갖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아기는 예쁘지만, 자녀 양육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 더 아껴 써야겠지?’ ‘휴가 때면 해외여행은 당분간 꿈도 못 꾸겠지?’ ‘더욱더 회사에 목을 매겠지?’ ‘부모가 된다는 건 보배를 얻는 대가로 희생을 치르는 일일까?’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지 희생만을 하며, 자식을 위해 소진되는 것만은 아닌듯 하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도 같이 성장한다는 것을 요즘 들어 부쩍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중 제일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타인을 향한 공감과 연대로 전이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랬듯, 학대 피해를 당한 아이가 사망하거나, 어린이집에서 또래 원아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두 손 쥐고 분노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뜨는 유기 아동 후원 광고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36화 <달라진 것들> 中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국가의 무능한 행정과 부패에 화가 치밀고, 희생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에게 연민을 느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해내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이를 키워내는 애틋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딸의 눈을 보고 세월호 부모님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보면 사뭇 다른 감정이 밀려온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애지중지 아이들을 키웠을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처음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영아산통에 밤새 괴로워하는 아이를 뜬눈으로 안고 토닥이며 자신이 대신 아프길 기도했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활짝 해맑게 웃는 아이의 눈을 보며 피로보다 안도와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고작 넉 달 된 초보 아빠인 내 마음도 이럴 진데, 하물며 17년을 품 안에 키운 아이 부모의 마음은 더 말해서 무엇하리.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딸아이는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마치 아빠를 알아본다는 듯이. 아이의 미소는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답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배너 광고에 등장하는 아이는 꼭 우리 딸 만하다. 가끔 딸의 모습에서 광고 속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내 아이 하나를 안고 있지만, 딸을 통해 세상 모든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김국환 아저씨의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에 나오는 가사처럼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은 서로 모른 채 인연을 맺는다. 필연이 아닌 우연처럼 찾아오는 게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라면, 내 아이가 곧 저 아이이고, 세상 모든 아이들은 곧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지 않을까.




 공감과 연대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의미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우리 부부는 살면서 봉사나 나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제 아내의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졌다. 마침 딸이 생긴 기쁨을 나누자는 차원에서 후원할 수 있는 기부처를 찾고 있었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던 터였다.


 나는 큰 단체에 다달이 얼마씩 하는 후원은 하지 말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물론 그것도 나눔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약자에 대한 죄책감만을 덜어내는 소극적 선행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작은 기관일지라도 우리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때로는 간식이라도 사서 찾아갈 수 있는 후원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딸이 생긴 계기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유기 아동들을 돕는 기관을 우선적으로 알아볼 계획이다.


 나는 딸이 배려심 많고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남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역시 아빠가 되어 깨닫게 된 교훈 중 하나다. 주호민 작가도 ‘셋이서 쑥’ 마지막 화에 이런 내용을 그려주었다.


52화 <일 년> 中


 말로는 아이가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서,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행동은 삼가야 할 것이다. 나부터 이웃을 배려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번 돈을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걸 먹고, 여행 가는 데에 모두 쓰는 것이 가치 있는 행동은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아이는 나를 지켜보고, 나의 행동을 따라 배울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항상 곁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거울 때문에 부모 또한 깨닫고, 배우고, 성장할 것이다.


 부모가 되는 것을 기피하는 시대에, 아빠가 되길 잘했다고 믿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바로 아이로 인해 성장할 앞으로의 나날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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