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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Oct 31. 2018

아침이 아침이고 싶어 아침이 아니듯

[Day 20] 아침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납니다. 사실 스스로 일어난다기 보다는 30분 먼저 울리고 꺼져버린 모닝콜이나, 배변판을 치워달라거나 신선한 냉수로 물그릇을 채워달라는 마하의 재촉 때문에 눈을 뜨게 됩니다. 


몸을 일으키기 전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멜론 앱을 실행시키는 것. (가끔은 헤이카카오를 외쳐 부릅니다)

보통 그날 하루하루의 기분에 따라 미리 지정해둔 플레이리스트틀 재생시킵니다. 오늘 아침엔 '나의 숲, 나의 별'이라고 명명한 '포레스텔라'의 플레이리스트였네요. (Dell'amore Non Si Sa라는 웅장하고도 로맨틱한 칸초네로 시작되는 플레이리스트라서 긍정 에너지 가득하게 하루의 시작을 맞이하기 좋습니다)


그 다음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크게 한 번 켭니다. 다음엔 침실 이너 커튼을 걷어 아침햇살을 한껏 받습니다. 

다음엔 거실로 나가서 또 커튼을 쳐내고 문을 열고 아침의 일기를 탐색합니다. 비어 있는 마하의 물그릇과 밥그릇을 깨끗이 헹궈서 다시 채워주고 나도 차가운 물 한 컵을 쭉 들이킵니다. 마하의 배변판을 치운 다음에는 씻으러 들어갑니다. 샤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머리를 말린 다음엔 전날 미리 준비해놓은 옷을 입거나 혹은 옷장을 열고 그날의 코디를 고민합니다. 제 코디의 포인트는 '가방'에 달려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오늘 백팩을 맬 일이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날의 스타일이 정해집니다. 오늘은 어제 들고 온 노트북을 들고 출근을 해야 하므로 티셔츠와 린넨 롱스커트, 린넨 뷔스티에로 캐쥬얼하지만 동시에 여성스러움도 잃지 않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화장도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기초화장은 로션과 썬크림으로 충분, 쿠션으로 베이스를 깔고 파우더와 치크로 마무리하고 눈썹과 입술을 그립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 치장을 빼먹지 않는 아프리카 부족처럼 귀걸이를 골라 끼고, 왼손엔 손목시계를 오른손엔 팔찌를 차고, 기분 내키는대로 반지를 낍니다. (데일리 아이템으로 낄 반지는 한꺼번에 여덟 손가락에 낄 수 있을만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한창 재생되고 있는 핸드폰에 이어폰잭을 꽂고 그대로 집을 나섭니다. 아차, 펫TV를 켜놓고 마하에게 간식을 주는 걸 잊으면 안 되죠. 마하의 공간에 던져놓은 져키 같은 것에 정신이 팔려 개는 안부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합니다. 나는 조용히 집을 빠져 나옵니다.


여름의 아침은 한낮만큼 눈부십니다. 요즘은 날씨도 좋아 황금빛 햇살로부터 굿모닝 인사를 받습니다.

쳇바퀴 돌 듯 하는 매일 아침이지만, 아침도 아침이 되고 싶어서 아침으로써 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는 그저 부지런히 자전할 뿐이고 그에 따라 아침도 뒤따를 뿐이고 그에 따라 나도 출근할 뿐인 것이지요.


"재능의 개발은 농업적 근면에 기초한다"는 제일기획 김홍탁 마스터의 말을 떠올립니다. 오늘 나는 또 어떤 재능을 개발하게 될까. 지구와 나의 농업적 근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런 실 없는 생각을 하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합니다. 매일 아침 사람들의 근면이 물처럼 고여드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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