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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Oct 31. 2018

콜로안 빌리지의 연인

[Day 33] 꿈

굉장히 오래 전부터, 기억하는 바로는 대략 열다섯살 무렵부터, 반복해서 꾸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전 같은 이오니아형 기둥을 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크기는 자그마한 아이보리색 건물. 그곳은 도서관이자 우체국이어서 나는 책을 빌리러 간 김에 '그리운 사람을 위해 쓴 편지'를 부치곤 합니다. 


그리고 도서관 맞은 편은 작은 항구와 맞닿은 바닷가 방파제.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아기자기 꾸며놓은 자갈바닥의 광장이 나오고, 더 걷다 보면 계란껍질 색의 지중해풍 성당이 등장,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죠.


나는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하지만 '그리운 사람'에게서 소식이 좀처럼 오지 않기 때문에 약간은 서글픈 기분으로, 그 길을 걷곤 합니다. 


반복되는 꿈, 반복되는 풍경, 반복되는 산책.


그 꿈이 뚜렷하지 않은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걸 자각한 후로는 그 꿈의 정체에 대해 파헤쳐 보려고 몇 번 시도 했었지만, 결국 알 수 없었죠.


그런데 몇 해 전, 태어나 처음으로 마카오에 놀러 갔을 때, 저는 정말 놀라서 그 자리에서 멈춰서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카오 도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찾아간 콜로안빌리지의 모습이, 제가 10년 넘게 반복해서 꾸던 그 꿈의 풍경과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에요. 


얼어버린 제게, 신랑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소소한 거짓말을 좋아하는 마누라가, 거한 농담을 한다고 생각할 게 뻔했어요. 나는 어쩌면 전생에 마카오의 원주민이었던걸까, 섬밖으로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그런 막연한 상상만 떠올릴 뿐. 


약간의 논리를 끌여다 붙여 설명하자면 열 다섯 살 이전에 내가 콜로안빌리지의 풍경을 어디선가 보고 무의식 속에 쟁여놨다가 쓸데 없이 리플레이시키는 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겐 그런 기억도, 그럴 동기도 없습니다. 


물론 마카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꿈을 꾸지도 않았어요. 최근까지도 가끔 콜로안빌리지의 그 풍경이 꿈에서 보이는데...어쩌면 마카오에 다시 가봐야 할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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