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래 Oct 31. 2018

우리를 늙게 하는 것

[Day 35] 나이

"지금이 결혼하기 딱 좋을 때야, 그 나이 지나면 안 돼."

"그 나이 되도록 자기 집 한 채도 없이 뭐한거니?"

"그래, 그 때가 제일 좋은 나이지..."

"나이 먹고 아이돌 쫓아다니고 그러는 거 되게 별로지 않냐?"


사람들은 나이에 대해 '선언'하는 말들을 쉽게 한다.

'표준'을 벗어난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는 주류의 특성, 혹은 '그 나이 먹도록' 자기의 삶에 대해 주체적인 컨셉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간편하게 찾는 게 '나이'라는 레퍼런스일 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 나이'에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일까.

때로는 '생후 몇 개월에는 머리둘레 얼마, 키 얼마, 체중 얼마가 표준'이라는 표준발달표도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에 맞지 않으면 마치 굉장한 하자가 있는 것처럼, 내 새끼를 끌어안고 실체도 없는 걱정의 몸집을 불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지표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이걸 절대적으로 여기고 이상한 자부심을 부리거나 필요 이상의 공포를 가지는 게 문제일 뿐.)


학생 신분이 아닌 청소년, 대학생이 되지 않은 스무 살의 청춘에게 던져지는 흘깃대는 눈빛들.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비유되는 스물 다섯 살의 여자. 요물로 취급되는 서른 살의 여자. 마흔 이후로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아줌마'라는 카테고리로 퉁쳐지기 마련.

30대 중후반의 남자라면 30평짜리 아파트, 3000cc짜리 중형차는 끌어야 한다는 3의 공식이라도 있는 것인지.


'아침이 아침이 되고 싶어 아침이 되는 것이 아니 듯' 나도 나이를 먹고 싶어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다.

한방향으로만 완강하게 흐르는 이 시간 속에서, 쓰면 쓸수록 닳고 헐어버리는 유한한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내가 시간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것' 뿐이다. 법에서 정해둔 나이에 의무교육을 시작하고, 적당히 학생의 본분을 지키며 다시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또 적당히 취준생의 본분을 지키다가 회사원이 되고, 남들이 '가장 예쁜 나이'라고 할 때에 결혼을 하고... 어떻게 보면 나야말로 '표준의 삶' 그 자체이긴 한데, 나 역시 '더 늦으면 노산'이라는 걱정인지 협박인지 뭔지 모를 소릴 듣고 있다.


그래도 철 들고 싶진 않다. 싸이의 어떤 노래였는지, '철을 왜 드냐고. 그 무거운 건 안 든다고' 낄낄거렸다던 그 노래가사를 항상 곱씹는다.

시간 속에 성숙해지고, 지혜로와지고 그것 역시 '그 나이엔 성숙한 게 매력' '나이 들면 지혜로워지기 마련'과 같은 선언과도 같이 느껴진다. 그냥 열 다섯 살 때의 나도, 스물 다섯 살 때의 나도, 서른 다섯 살의 나도 그저 나일 뿐. 


우리를 나이 들게 하는 건, 늙게 하는 건, 매일 같이 뜨고 지는 저 태양이 아니라, 그저 부지런히 한방향으로 돌고 돌 뿐인 지구가 아니라, '그 나이대로 살고 있지 않음'을 꾸짖고 표준의 경로로 편입하라고 재촉하는 저런 말들이다. 저런 쓸데 없는 오지랖 대신 차라리 비타민이나 건강차 같은 거나 챙겨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콜로안 빌리지의 연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