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9]
고등학교 1학년 때, 수업시간 중 선생님과 싸운 일이 있습니다.
싸웠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제가 싸가지(?) 없었다는 소릴 들은 거지만 아무튼...
무슨 맥락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선생이 "그렇게 공부 안 하면 공장이나 다니게 될 것" 같은 소릴 했어요.
순간 저도 모르게, "선생님, 여기 부모님이 공장 다니는 애들도 있는데 그런 말씀은 좀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선생은 '이건 뭐지?'하는 눈빛으로 절 쳐다보더니 그냥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수업 말미에 본인이 생각 없이 말한 것 같다고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사과하긴 했어요. 그리고 이게 윤리 시간에 일어난 일이란 게 개그 포인트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들이란 존재는 참 '무신경한 어른들' 투성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 없이 지원한 대학에 수시 1학기 전형으로 최종합격 통보를 받게 되어서 6월을 기점으로 입시를 마무리할 것이냐, 조금 더 상향 지원을 노려 수시 2학기나 정시까지 치를 것이냐를 선택해야 했는데 이미 합격한 학교도 충분히 좋은 곳이고 나중의 일은 또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니 상향지원을 포기하고 입시를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 '서울대를 안 갔다'는 이유만으로 촉망받는 우등생에서 원망받는 문제아가 되어버렸어요. 나를 예뻐해주던 체육 선생님의 냉대 섞인 시선을, 도대체 왜 그런 소릴 들어야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수업 시작하자마자 '너는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 안 해봤니?'라고 운을 띄우더니 10여분간 나를 쪼던 정치 경제 선생의 잔소리를, 묵묵히 견뎌야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공립학교는 명문대 입학생 수에 따라 '머리 당' 얼마씩 지원금이 더해진다고 하더군요. 후배들의 입학 T.O.에도 영향이 있고... 그런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수업 분위기 흐린다고 수업시간에도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저를 품어준 건 독서실과 전산실 보조교사 선생님들 뿐이었어요.
차라리 저렇게 구박하는 건 상관 없는데, 어디서 무슨 얘길 어떻게 들었는지 '나의 불행'을 완전히 오해해서는 갑자기 '내가 니 선생이다' 코스프레를 하면서 '나도 이만큼 불행했지만 잘 이겨내고 훌륭한 영어교사가 됐잖니?'를 시전하는 담임 때문에 어처구니가없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1시간 가량 자기 얘기만 떠들어대는데 속으로 '아 제발 그만'만 외치다가 너무 지겨워서 '아 알겠고 나 괜찮으니까 잘 살게, 고마워'했더니 '그래 니 나이 땐 다른 사람 얘기가 귀에 안 들어올 수도 있지. 그치만 나중에 너를 위해 이런 얘기를 했던 선생님의 마음은 잊지 말아주렴'하고 마무리 멘트까지 치는 바람에 기절할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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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다지 좋은 추억은 없고 한심한 어른들과 한심한 아이들과 그 중에 최고로 한심했던 '나'의 기억 뿐이지만...
그래도 딱 한가지 마음에 새긴 것이 있다면 '난 저렇게 무신경한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참어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이어졌는데... 여전히 이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을 못 내고 있네요. (은행 이체 한도 5억원으로 설정했을 때 느낀 건'그냥 어른')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직업으로 '교사'를 선택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