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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Oct 31. 2018

내가 사랑한 한국소설

[Day 91]


좋아하는 작가는 많지만 좋아하는 '소설'이라면 김승옥의 단편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를 꼽습니다. 수능 국어 문학 지문에서 처음 만났지만, 지금보다 더 어리고 지금보다 더 가난했던 시잘 '친절함이란 돈을 주고 사는 것'이라는 대도시의 생리를 깨닫고 '돈이 없어 거절 당했던' 날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제게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붙잡는' 성경 같은 바이블이 되었어요. 

쉽게 접할 수 있는 단편 소설이다 보니 A4용지로 출력해서 소장해왔는데 그게 너덜너덜 해지도록 읽었습니다. (지금은 김승옥 전집이 책장에 있지만..) 소설 자체는 '슬퍼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슬픔'으로 똘똘 뭉쳐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모습이 나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돈의 냉정함과 도시의 무정함에 마음을 다쳐 위악에 빠지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아무 페이지나 들춰서 소리내어 읽다 보면 까닭 모를 위로와 함께 마음 속 한가운데서 단단한 무언가가 자라났어요. 허무의 바닥에서 두 발을 딛고 다시 그 심해에서 솟아오르는, 그런 힘을 얻는 기분.

김승옥 선생님은 이후 영적체험을 하고 작가가 아닌 목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고 절필했습니다. 하지만 뇌졸중 때문에 목사가 되지는 못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심해 언어 기능에 장애를 입으셨다고 합니다.

그의 소설이 내게는 구원이었는데, 그토록 날카로운 시선과 유려한 언어로 세상의 부조리함을 파헤치고 외로움과 허무함에 찌든 영혼들을 규합하던 천재작가가 현실의 말을 잃고 신에게 귀의해 안식을 찾았다는 게 내게는 사실 제일 슬픈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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