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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Nov 08. 2018

그녀 - 창을 열면

181108

속눈썹이 단정했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에, 희미하지도 빽빽하지도 않은 적당한 숱.

너무 옅지도 짙지도 않은 적당한 쌍꺼풀 아래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아몬드 같은 눈이 예뻤다. 그 눈 속에 담긴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자신의 일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손이 희고 작았다. 굴곡 없는 가느다란 손가락, 엷은 분홍빛의 손톱, 조심스런 손놀림. 소녀 같았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가만히 내 손을 내려다보았지만, 그건 내 생애 '어느 날'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흐린 창가옆에 마주 앉아 속살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함박 웃으며 '맞아요, 정말요, 그래요'라고 맞장구치는 입매가 내게도 전염되어 왔다. 코끝에 전해지는 향긋함은 내 찻잔 속 루이보스의 가향인지 그녀의 체취인지.


요즘 세상은 너무 잔혹한 것들 투성이라고, 따뜻한 이야기를 보고 싶다고, 당신에게 부탁한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도 그런 이야기를 찾고 있다고 했다.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찾았을까. 늦가을 비 오는 아침, 오늘은 그녀가 내어준 따뜻한 창을 활짝 열어 젖히겠다. 그녀가 알려준 이국의 청년이 건강한 목소리로 부르는 박하사탕 같은 노래처럼. 기꺼이 맞이하는 아침.


그녀를 앞에 두고 내가 꺼낸 얘기 중에는 '대상의 일부만을 취하는 것은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예의없는 일, 그 대상 전부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제가 있었다. 그런 내가 그녀의 속눈썹, 눈동자, 손, 입매...같은 것들을 따로 떼어 언급한 걸 용서하길. 내게 온전히 남은 그녀의 기억을 이렇게 밖에 풀어내지 못하는 모자란 나의 언어를 용서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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