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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Nov 09. 2018

그녀 - 덕후의 마음

181109

'근데 제가 지갑을 안 가져 왔어요 헤헿'

'니가 밥사기로 했잖앜ㅋㅋㅋ 괜춘 나 지갑 있음'


쟁반 두 개를 붙여놓은 듯 자그만 2인용 테이블에 머리를 맞대고 마주 앉아 도란도란 떠들었다.

테이블 한 켠에 놓인 자동차 스마트키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말하니 나도 꼰대가 다 됐구나 싶지만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땐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 사회초년생이었는데 이젠 직접 운전을 해서 출퇴근 하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구나. 우와 멋져-생각했다. (장롱면허 3년차)


주문한 음식이 꽤 늦게 나왔지만 우리 수다의 주제는 끝이 없어서 기다림의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오 후플푸프 맨투맨이네? 이번에 그 콜라보야?'

'아니요! 이거 영국에서 직접 사온 거에요! 원단 엄청 좋은 거예요!'

'오 그러네! 너도 호그와트 기숙사 테스트 하면 후플푸프 나왔어?'

'아마 그랬을 걸요?'

'응 잘 어울린다. 나도 후플푸픈데!'

'와 정말요? 근데 후플푸프는 이름도 너무 후플푸프 잘 어울리지 않아요? 뭔가 좀 아무도 안 해칠 거 같고 무해하고...'

'맞아! 뭔가 좀 우물쭈물하고... 우물쭈물 후플푸프...'

'맞아욬ㅋㅋ 맞앜ㅋ'


옆자리 아저씨들이 듣기엔 대체 무슨 소린지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건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을테지만 우리는 즐거웠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우리만의 무해한 시간.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그녀는 '최애'의 생일에 최애를 보고 들은 이후 최애를 생각만해도 눈물이 난다고 미친 것 같다고 고백해왔다. 마치 깊은 신심(信心)과도 같은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그건 감동적인 영화나 소설을 보며 우는 것과 같다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줬다. 보통 우리의 최애들은 지금 우리의 물리적인 나이가 얼마든지, 우리가 어떤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든  상관 없이 우리를 열 넷 혹은 열 여섯 살 소녀로 되돌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까닭 모를 애틋함이 벅차올라 눈물로 흐르는 건 이상할 일도, 부끄러울 일도, 비난 받을 일도 아니라고.


사랑에 빠진 모습이 사랑스러운 그녀.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에 놀라 당황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운 그녀. 그녀 덕분에 나도 나의 사랑을 스스럼 없이 얘기할 수 있어 다행인 시간. 다시 한 번 아무도 해치지 않는, 우리만의 무해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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