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9
#.
친구의 권유로 배민찬을 이용해봤다. 세 번 주문했고, 대체로 만족스럽다.
특히 손이 많이 가거나(장조림), 내가 제대로 맛을 내기 어려운(석박지, 진미오징어채볶음, 매실장아찌) 밑반찬류를 쟁여놓고 먹기에 좋고 집에서 쉽게 해먹기 어려운 요리(도가니탕)도 반조리 상태로 받을 수 있어서 편했다.
다만, 내가 어느 정도 맛을 내어 할 수 있는 요리(잡채, 새우장) 같은 경우엔 '아 이거 이 가격이면 두 배는 만들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따지고 있던 가격에는 그 요리를 만들기 위한 식재료와 부재료의 '원가'만이 들어갈 뿐, 그걸 직접 만드는 내 노동력에 대한 댓가는 없었다.
나 스스로 '집밥을 요리함'에 있어 투입되는 노동력의 경제적 가치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 반찬을 만들어 파는 상인들의 노동력에 댓가 또한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오름.
#.
옳은 지적이다. 상품을 판매하는 것 뿐 아니라 집에서 밥을 차리는 나의 노동력에 대해서도 경제적인 가치는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집밥 요리를 다시 할 생각이다. 여기엔 히든 팩터들이 있다.
ㅁㅅㅇ님은 사먹은 잡채보다 내가 한 잡채가 더 맛있다고 했다. 내 입에도 좀 그런 듯 해서 왜 그런 걸까 생각해보니 (내가 무슨 장금이 뺨치는 요리실력을 가진 게 아니라) 잡채를 하기 전에 준비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런저런 냄새들이 전혀 없이 뎁혀진 잡채만 덩그라니 내놓아진 게 문제였던 것 같다. 버섯과 나물을 볶으면서, 당면을 식혀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하고 갖은 재료와 버무리면서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는 달큼하고 고소한 냄새가 바로 그 밥상의 에피타이저였던 거다.
ㅁㅅㅇ님은 머리와 껍질이 먹기 좋게 분리된 '깐새우장'보다 내가 투박하게 만든 새우장이 더 맛있다고 했다. 그래서 새우장엔 젓가락을 거의 대지 않았다. ㅁㅅㅇ님의 밥도둑이 될 것이라 상상하며 샀던 깐새우장이 외면 당해서 조금 슬펐다. 기껏 사줬는데 먹질 않아서 아쉽다거나 또 나한테 새우 100마리를 손질하게 만들 셈이냐며 짜증나는 게 아니라 그냥 좀 슬펐다. 맛있게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가뜩이나 요즘 살 빠졌다고 시무룩하다) 어쩔 수 없지. 새우 수염 좀 자르고 내장 좀 제거하고, 그깟 게 뭐 대수라고. 사먹는 반찬은 사먹는 반찬대로, 해먹는 반찬은 해먹는 반찬대로 의미가 있으니.
#.
먹방 예능 <맛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일부 시청자들이 "왜 맨날 주문은 여자인 김민경이 하는 거냐"며 불만을 터뜨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얘길 듣고 유민상은 "나는 맨날 운전하는데? 그건 왜...", 김준현은 "맨날 불판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고기 굽고 자르는 건 난데? 그건 왜..."라는 반응을 보였다. (문세윤은 막둥이라 자긴 그저 행복하다며...)
ㅁㅅㅇ님은 내가 해준 잡채와 새우장을 먹는다. 맛있었다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장을 보러 갈 때, 마하를 데리고 놀러 갈 때, 아빠가 입원한 병원으로 병문안 갈 때 등등 차를 끌고 나갈 일이 생기면 짧게는 몇 십 분 길게는 몇 시간 운전을 한다. 요리 후 뒷정리와 설거지를 하는 건 내 몫이다. 그동안 ㅁㅅㅇ님은 온집안을 쓸고 닦는다. 우리 사이에 그다지 일방적인 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좀 일방적이면 어떤가-하는 생각도 든다. 이건 그냥 우리 사이의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