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번거로움
나름 시골로 귀촌하며 외치던
말과는 달리 약 7년간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즐거운? 마트 생활을 해왔다.
그간 주변의 농가에선 남는 채소와 과일들을 종종 주셨고 감사히 잘 받아먹으며 살았다.
(물론 우린 빵과 음료로 그에 대한 보답을 드렸다.)
올해 여름 잦은 비로 작물보다 벌레들이 더 많아졌고
나의 텃밭엔 더 이상 먹을 야채가 없다.
그래서 금값보다 조금 싼 야채를 대신할 맘으로 새싹으로 자급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간단히 시작한 것에 비해 아이들의 관심과 피어나는 새싹의 아름다움에 점차 애정이 샘솟고 있다.
노파심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잘라먹을 때 너무 미안하지 않을 정도만 친해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씨앗을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씨앗과 추천하는 재배기를 샀다.
씨앗은 보통 한통에 천원남짓 하지만 먼 곳에 사는 우리는 그들을 모셔오기 위해
몸값보다 비싼 배송비용을 충분히 지불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배는 도착했지만 나의 일거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씨앗이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나 사용방법을 읽었다.
새싹을 키우는 글과 그림은 생각 외로 단순했다.
그런 까닭에 나의 물음은 상당히 많아졌다.
물은 얼마 만에 주어야 하는지, 햇빛은 얼마나 보아야 하는지.
재배 후에는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까지.
생각해보면 이러한 질문이 처음은 아니었다.
집을 짓고 이사를 하고 당연히 마당이 있는 시골에 사는 사람으로서
땅을 보면 무언가 심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심어보긴 하였지만
나는 여전히 식물과 친하지는 않다.
이름을 알지도 못하고
그들이 나보다 벌레와 친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여하튼
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를 것 같다.
일단 벌레로부터 자유롭고 눈에 보이는 곳에서 변화를 관찰하는 기른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하루하루 아니 매 시간 시간마다 햇빛과 물의 도움을 받은 우리 씨앗들은 변화를 계속하였고
우리는 그들의 변화에 점차 감동받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싹들은 보리와 무순이었다.
재배기의 바닥을 물에 적셔 습습하게 해 주었다.
살짝 어둡게 해 준 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주니 동그랗던 씨앗이 털북숭이처럼 몽실몽실 해졌다
남편은
'이거 곰팡이 아니야?' 라고 했지만
나는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을 뽐내며 기다리라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한 것은 그저 기다린 것뿐이었다.
어느새 새싹은 위로 초록머리가 자라고 아래로는 하얀 꼬리가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초록머리가 먹고 싶었고, 딸아이는 하얀 꼬리가 궁금해서 매일매일 들여다 보고 물을 뿌려주었다.
풍성해지고 있는 잎들이 나의 첫 번째 자급자족의 성공을 알리는 듯했다.
마트에서 야채를 살 때는 얼마나 저렴한지 상품의 질이 좋은지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집에서 새싹을 기를 때는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시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을을 맞이한 농부의 마음을 티끌만큼 느낄 때쯤
수확은 이미 끝이 났다.
한 움큼.
아이들과 그간의 순간들을
이야기하며 감사히 즐기리라...
기르는데 4일 정도 걸렸고 가위로 잘라먹는데 한 끼면 충분했다.
솔직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은 아니어서 몸에 좋다는 그 흔한 말로 설득하여 반찬으로
내어놓기는 했으나 그다지 환영받지는 못하였다.
기른 기간에 비해 한 끼의 식사는 살짝 허무한 기분도 있었지만 처음 느껴보는 식물에 대한
경험이기에 잘 간직해두려 한다.
나중에 아이들의 관심이 떨어질때즘 다시 상기하여
'또 다른 도전으로 이끌어보리라!'
라는 생각했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간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바쁘고 번거롭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내 한 끼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오늘도 나는 긴 숨을 내쉬며 늘어진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묶는다.
귀여운 나의 새싹들의 아침을 준비하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켠다.
오늘의 일상이
너무 흔한 하루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여기서
히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