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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been 금콩 Oct 22. 2020

내 약점노트_07.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제일 어려운 건 저를 아는 거예요.

 시간은 지금 어제에서 오늘로 간신히 넘어왔습니다. 창밖에는 가을을 보내려는지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고요. 오늘 저는 한없이 우울한 기분에 잠겨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더더욱 우울해졌어요. 사실 알고 있었어요. 오늘 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누겠구나. 그런데도 방법이 없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아직도 저를 모르겠거든요.


 오늘 왜 힘든지 도통 알 수가 없었어요. 분명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뿌듯했고, 책을 읽으며 여운에 빠지기도 했어요. 책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도 곁에 있어서 따듯한 기분까지 느꼈어요. 근데 왜인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니 오늘 블로그 포스팅을 제외하곤 책상에 앉지도 않았네요. 방 침대에 가만히 앉아 천장을 바라보는데 왜 자꾸 울컥울컥 가슴이 막막하고 눈앞이 흐려질까요? 뭐가 그렇게 응어리져 있길래 누워서 답이 없는 상념에 잠기는 걸까요?


 언젠가 친구가 진지하게 물어봤어요. 뭐가 그렇게 고민이고 생각이 많냐고요. 그러게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어릴 때부터이지 않을까요? 제 눈앞의 상황이 항상 급박했어요.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채무자가 집으로 찾아오는 상황에 저는 잠든 척, 못 들은 척했어요.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학교에서 해주는 급식비 지원을 받으며 부끄러운 줄은 몰랐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나 봐요. 어느 정도 생각이 크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선 어떻게든 빨리 취업하고 싶었어요. 아마 제 인생에 가장 최선을 다했던 2년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 졸업을 하고 공백기 없이 취업을 했어요.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집에 보탬이 되면서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11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걱정, 고민은 없었어요. 그러다 꿈이 생겼고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서 퇴사를 했지만 세상은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는 걸 저에게 알려주려 했나 봐요. 월초에 계획했던 모든 일이 엉망이 되었어요. 그러자 또다시 집안의 경제 사정이 나빠졌어요. 신용불량자가 된 부모님을 대신해 제 이름으로 전셋집을 구하게 되면서 쉬는 1년 동안 불안함이 또다시 제 안에서 생겼나 봐요.


 제 퇴직금은 고스란히 부모님의 손으로 가게 되었어요. 알아요. 부모님이 제 돈을 때 먹으실 분이 아니라는 걸요. 근데요, 상황이 의지를 억누를 수 있잖아요?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제 돈을 못 갚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엄마는 이해를 못했나 봐요. 차용증이라도 써달라는 제가 많이 섭섭하셨나 봐요. 사실 효력도 없을 텐데 말이죠. 또 자존심은 세서 이러쿵저러쿵 내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애정 없는 사람들의 충고는 듣는 게 아니라는 걸 첫 직장을 퇴사하면서 뼈저리게 느꼈거든요.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무거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도 않아요.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가 제 고민에 동화되면 어떡해요? 그럼 제 마음이 더 무거워질 텐데...


 어쩌면 이때까지 저는 저를 잘 안다고 착각을 했었나 봐요. 나는 멀티가 가능한 사람이고, 잠도 잘 자. 그리고 웬만한 건 무리 없이 잘 먹어. 이렇게요. 근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제 내면에 관한 모습은 전혀 없었어요.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떨 때 슬픈지, 어떻게 해야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지. 아는 게 전혀 없더라고요. 취향이 없는 걸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보기 좋은 말로 대체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네요. 항상 불안한 상황 속에서 나의 내면에 대해 고민하는 게 사치라고 생각했나 봐요. 저는 안되면 말고의 생각을 하면 안 됐어요. 해내지 못하는 일에는 도전조차 하지 못했어요. 돈도 시간도 저에겐 없으니까요.


 참 어렵죠? 저는 제 나이쯤 되면 흔들리지 않고 꽤나 묵직한 사람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더 흔들리고 약해지는 기분일까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리니 모든 게 두려운 기분이랄까요? 내일은 나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짓된 말도 이제는 못 하겠어요. 그래도 오늘 책 한 권 읽어낸 걸로 위안삼아 보려고요. 그저 내일은 내가 슬프지만 않으면 좋겠네요. 아, 비는 좀 내려도 좋아요. 내일은 나가 우산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좀 듣고 싶거든요. 다들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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