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술은 '우울체'인가요, '기쁨체' 인가요?
술이 좋은 이유에 대해 쓰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 건 진정성에 어긋난다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일 좋아하는 KGB 한 캔을 샀다. 깔끔한 레몬 맛 술에 어울리는 담백한 안주거리까지 계산하고 들어오는 발걸음이 평소보단 가벼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슬플 때 먹는 술은 꼭 탈이 나니 말이다.
지난 독서모임에서 ‘술이 당신에겐 우울체인가요? 기쁨체인가요?’ 라는 질문에 혼자 생각만 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단편 소설 모음집 속 ‘감정의 물성’ 편에 나오는 ‘우울체’ , 우울을 형상화한 대상을 만지거나 손에 쥐고 있으면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신기한 물건을 말한다. 나에게 술은 어떤 감정을 대체하고 있는 걸까?
사실 나는 술이 몸에 받지 않는다. 술이 한잔 들어가면 이마부터 팔다리 끝까지 빨개진다. 거기에 신이나 술을 더 부어버리면 점박이 마냥 울긋불긋 온몸이 놀란 기색을 드러낸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한 혼술은 맥주 한 캔을 채 채우지 못하고 끝나 버릴 때가 다반사다. 이런 몸을 가지고도 나는 또 연거푸 술을 찾아댄다.
술을 마시면 내 몸은 정상적인 기능들의 가동도 힘들어한다. 숨이 가쁘고 심장 소리는 가슴팍을 넘어 귀까지 다가와 울린다. 그러면 생각이란 것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진다. 하지 않아도 되는 먼 미래의 고민부터 이미 결론을 내어놓고 다시 끄집어 의심까지 모두 내 숨과 심장 소리에 집중하느라 뒤편으로 밀려난다. 나의 호흡, 심장의 움직임에 집중하기만도 버거운 상태가 어쩌면 나에게 쉼을 주는 느낌이다. 혼자 먹는 술은 나에게 ‘쉼체’인 듯하다.
나는 혼자 마시는 혼술뿐만 아니라 술자리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있자면 어울리는 주종이 머릿속을 스친다. 내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술을 마시자는 제안을 한다는 건 이미 상대가 내 편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금은 흐트러지고 버거워하는 모습이 들켜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아니 좀 더 솔직하자면 그 부족한 모습이 상대와 나 사이에 거리를 좁혀줬으면 하는 마음에 술을 제안한다. 사회적으로 나에게 씌워지는 이미지를 벋고 진짜 내 모습이 되어도 술이라는 녀석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은 상태가 좋다. 그리고 내 본모습을 본 상대가 온전한 나의 모습을 받아들여 주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어쩌면 어리광 섞인 이기적인 부탁일 거라 고민하지만 내게 더 나은 호감의 표시는 없는 듯하기도 하다. 함께 먹는 술은 나에게 상대를 향한 ‘호감체’이다.
근래 몇 달간, 혼자든 여럿이든 술을 마시는 빈도가 많이 늘어났다. 일주일에 세, 네 번 정도는 술과 함께 넘어가는 하루를 마감하는 편이 되었다. 밥을 먹으며 어울리는 술을 마실지 말지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나는 술을 좋아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어주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멈출 시간을 주고 상대와의 관계에 깊이를 더해주는 술이 좋다. 코로나로 술자리를 제안하기 힘든 이 시국, 얼른 내편인 상대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와중에도 오늘 저녁 혼술 종류와 안주를 고민한다.
술찔이인 나는 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