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배가 힘든 이 현실을 그만 보고 싶다.
“너는 그런 말들이 아무렇지 않지?”
오랜만에 본 친구와 내가 앞으로 지향할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다 들은 말이었다.
이름 있는 회사 퇴사, 28살에 대학 편입, 창업 준비,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며 사는 것 같은 내 모습을 보고선 단단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고집이 세서인지, 쓸데없는 자존심인지, 기업의 일원이라는 면죄부를 가지고 불합리한 업무를 해내고 싶지 않다. 세상을 이끌어 가는 건 악과 편법이란 자조 섞인 말을 내뱉으며 내가 하는 일에는 절대 선을 지키고 싶어 한다. 이런 날 보고 제발 순응하라는 주변의 이야기는 지겹도록 들어왔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계속해서 나빠질 거라 한다. 그 틈에서 내 밥그릇을 찾아 평탄하게 살았으면 하는 걱정의 마음이겠지. 그렇지만 그런 말들이 내게 그리 달갑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나의 밥그릇을 고민하고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려나 모르겠다.
금전적인 근거를 만들고 단계별 진로 계획을 세우며 철없어 보이는 내 신념에 보험들을 차곡차곡 만들어 왔다. 아직 내가 철없어 보인다는 건 남들이 철없을 때 이미 철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22살 첫 사회생활에서 몰라서, 어려서 당했던 모든 불합리를 내가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었음 한다. 내가 선을 지키더라도 지탄받지 않을 권력,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시하고 만들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려 오히려 나는 시간을 역행 중인 기분.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인파들 사이를 반대로 걸어가고 있는 기분.
“너랑 이야기해야 내 지금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단 말이야.”
친구의 고민에 서슴없이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마 내가 적지 않은 고행을 겪어 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젊은이의 순수한 열정을 값싸게 이용하려 명언인 척 말도 안 되는 말 말라며 한마디를 얹으려다 또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젊은 날의 고행인 듯해 말을 아낀다. 하지만 이 어이없는 대물림이 내 선에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그래서 뒤이어오는 사람들이 받지 않아도 되었을 상처에 아파하지 않기를.
첫 사회생활에서 상처 받는 너무 많은 동년배들을 목도해왔다. 최근에도 안타까운 소식이 들여 며칠 동안 마음이 쓰였다. 우리는 언제부터 당연함을 말하는데 이렇게나 많은 권력과 힘이 필요해졌을까? 배워왔던 정의와 너무 다른 모습의 사회생활에 상처 받는 걸 보고 '요즘 것들은...'이라는 애정 없는 말을 멈춰줬으면 한다. 더 이상 나의 동년배를 잃는 일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