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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been 금콩 Feb 13. 2021

평등의 저울질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더 따듯할 거니까.

 손끝이 아릿하게 추운 달밤의 산책을 좋아한다. 찬 공기를 한껏 들이켜면 냉수라도 마신 듯 상쾌하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까닥거리며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한다. 인적 없는 텅 빈 거리를 보며 꽉 찬 하루를 정리하는 이 시간, 밤 11시를 약간 넘긴 밤거리의 산책을 즐긴다. 내 이야기를 듣고, 짧아진 내 머리에 자신이 다 아쉬운 듯 기를 생각 없냐며 묻던 친구도 놀라 머리를 더 짧게 자르라고 했다. 긴 머리로는 내 달밤 산책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난 공중 화장실의 청결도를 크게 따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전에 다닌 독서실 화장실 문 앞에는 ‘추행 행위 금지’라는 경고문과 ‘뒤에서 부르면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세요!’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성별 분리 화장실도 이 정도인데 공동 화장실이면 매번 기분 나쁜 경험을 한다.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해도 괜찮다며 들어오는 사람, 깜짝 놀라 문을 닫으면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사람들까지.


 나는 이런 일을 겪고 있고, 이게 나와 같은 성별의 집단에서는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의 존재 자체가 어떤 이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같은 행동에도 행위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느끼는 위협도는 확연히 다르다. 내 행동에 언짢아진 상대로부터 되돌아오는 반응에 어쩌면 내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일상을 지낸다. 무섭다고 일상을 버릴 수 없으니.


 난 겁이 없는 게 아니다. 벌레 한 마리에도 기겁을 하고, 예상치 못한 일에는 말을 더듬을 정도로 긴장한다. 그저 최대한 티 나지 않는 연습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내가 무서워한다는 것조차 상대의 기분에 언짢음을 얹어 줄까 봐, 혹시나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을까 봐를 위협받는 동시에 걱정한다.


 언제까지 이 저울질을 계속해나가야 할까?  그저 다들 본인의 모습으로 본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분류에 묶이지 않고 고정관념의 테두리라는 한계가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이들은 포기하라 하겠지만 난 아직 세상의 따듯함을 믿는다. 좀 더 따듯한 미래가 오기를 최선을 다해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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