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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세윤 Apr 08. 2021

피해자의 고백

일주일 전, 출근하면서 현관문 앞에 놓인 서울 시장 선거 공보물을 챙겨 나왔다. 사무실에 도착해 열어보니 여성 후보만 5명이었다.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후보는 무려 3명이었다.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아무래도 전임자의 성비위 사건으로 치르는 보궐 선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선거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가 떠오른다. 권력자의 성비위 사건이라는 점,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사건 전부를 묻으려고 하는 권력자들, 궁지에 몰린 가해자의 극단적 선택까지. 두 사건은 닮은 점이 참 많기 때문이다.


 다큐의 주인공 제프리 엡스타인은 미성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 피해자는 수백 명에 달한다. 제프리는 유명 배우, 영국 왕자, 정치인, 재벌과 친하게 지내며 이들에게 그가 유인한 여성들로 성접대를 했다. 그렇게 쌓아 올린 권력으로 사건을 묻으려 했고 피해자들이 발설하지 못하게 협박했다. 그러나 미투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무렵 이뤄진 고발에선 더는 모면할 수 없었다. 로비를 받은 이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유죄를 직감한 그는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프리 엡스타인: 괴물이 된 억만장자> from Netflix

 이 같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사건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면 나는 여전히 분노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한다. 나 역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그곳의 멋진 해변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산토리니의 눈부신 아침 햇살이 하얀 건물과 파란 지붕을 내리 덮고 있던 무렵, 홀로 좁은 골목길과 바닷가를 누비고 다닐 때였다.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홀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는데 어느 외국인이 내 엉덩이를 만지고 'Hi' 하며 지나갔다. 순간 모든 사고의 흐름이 정지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금 당한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지나고 보면 왜 아무것도 못 했을까 싶지만, 되돌아가도 내 반응은 똑같을 것 같다. 처음엔 ‘내가 반바지를 입고 걸어서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뙤약볕에 그 정도 반바지쯤 입고 걸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난 일종의 테러를 당한 건데, 테러의 이유를 찾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밤늦은 시간, 마드리드 택시에선 성희롱을 당했다. 택시 기사는 신호에 차를 잠시 멈춘 사이 뒷좌석에 탄 나를 굳이 조수석에 타게 했다. 그러곤 스페인식 인사인 볼 뽀뽀 두 번을 요구했다. 이어 동서양 남성의 성기 크기에 대해서 얘기하더니, 서양 남성 경험이 없으면 자신이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바로 'No!'라고 외친 후 택시를 멈춰달라 했다. 겁을 먹어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내리자마자 곧장 집까지 전력 질주했다. 처음엔 ‘내가 밤늦게 다녀서 이런 일을 당한 걸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사라 (Sarah)’ 시위가 그 답은 정확히 ‘no’ 임을 증명해줬다. 영국 여성 사라가 밤에 집까지 걸어가던 중 현직 경찰에게 납치돼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후 경찰 발표에서 여성은 밤늦게 혼자 다녀선 안 된다고 한 것이 그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공분한 여성들은 '우리도 밤에 걸어갈 자유가 있다'고 외쳤다. 녹색당의 존스 의원은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남성들의 통금을 저녁 6시로 하자는 다소 과격한 제안도 했다.

Photo by Ehimetalor Akhere Unuabona on Unsplash

 이런 일상에서의 성추행 피해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직장에서 일어나는 권력자에 의한 성희롱이다. 가해자는 매일 보는 사람이고, 나보다 계급 상 힘 있는 인물이기에 항의할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숱한 성희롱을 당했다. 술자리는 남성보다 여성과 해야 재밌다는 말을 듣거나, 외모 품평을 듣거나, '이번 여름휴가는 남자 친구랑 가지?' 하며 낄낄대는 농담을 듣거나, 남성 상무 옆자리는 비워둬서 나 같은 여성들이 앉게 한다거나.


 이런 성희롱은 시간이 지나면 증명하기도 쉽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 시비가 붙기도 한다. 특히, 중년 남성 중심의 조직이라면 피해 사실을 언급해도 '그 정도로 뭘 기분이 나빠? 예민하네, 거참' 하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최악의 경우엔 ‘당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거나, ‘네 잘못도 있다’ 거나 하는 모욕적인 말도 들어야 한다. 어쩌다 용기를 내 고소라도 하려면 회사를 관두고 관련 업계에 발도 들이지 않겠단 정도의 결심이 서야 가능하다. 좁은 사회에서 말은 쉽게 돌고, 피해자는 '예민하고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서울 시장 사건의 피해자도, 제프리 엡스타인의 희생양이 된 여성들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 사회적 목숨줄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대드는 건 무척 어렵고 에너지 소모가 크다.


 서울 시장 사건의 피해자는 기자회견에서 ‘피해 호소인’이라는 명칭을 쓰자고 주도한 여성 정치인 3인방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중엔 평소 내가 호감을 느끼고 있던 정치인이 둘이나 있었는데, 한 명은 여성가족부 장관도 역임한 인물이라 실망이 컸다. 성희롱 피해를 대중에 공개하고 권력자를 고발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인데, 같은 여성끼리도 공감하고 연대해주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설 자리는 어딨을까. 우리마저 그렇게 외면한다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인권은 여기서 얼마나 더 후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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