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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세윤 Apr 29. 2021

주정뱅이의 금요일

혼술의 미학

드디어 금요일이다. 좀비처럼 죽어 있던 직장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금요일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진 희멀건 얼굴에 표정 하나 없었는데, 금요일 오후가 되니 저절로 혈색이 돌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목요일부터 ‘내일 저녁은 뭐 먹지?’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금요일을 맞이한다. 주 5일 동안 업무에 시달렸기에 휴일의 시작점이 되는 금요일 저녁을 그 어느 때보다 성공적으로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주엔 직화 숯불 닭발과 증류주, 토닉워터가 끌렸다. 직화 방식으로 익혀 숯불 향이 잘 배 있는 매콤한 닭발을 배달 앱에서 찾아 미리 하트를 눌러 뒀다. 먹기 쉽게 무 뼈로 선택하고 매운맛을 중화해줄 달걀찜을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 근처 편의점에선 2+1 행사를 하는 토닉워터 세 병과 그날 끌렸던 증류주 한 병을 샀다. 요샌 편의점 주류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전통주 등 새롭게 출시되는 술도 많아서 잘 살펴보고 맛 좋은 한 병을 골라내야 한다.

 


Photo by Giorgio Trovato on Unsplash


 이렇게 원하는 안주를 주문하거나 직접 요리해 알맞은 그릇에 담아낸다. 술의 종류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잔도 고른다. 과실 향이 있는 술이라면 얼마 전 구매한 작은 고블릿 잔에 따라본다. 탄산이 있는 술이라면 800mL짜리 맥주잔을 꺼내 벽을 따라 천천히 붓는다. 전통주라면 작은 도자기 잔에 2/3가 차게끔 따라준다. 음식과 술이 준비되면 백색 형광등은 끄고 캔들 워머를 켠다. 어두운 방 안에 작은 불빛과 캔들의 향이 가득 차게 한다. 퇴근 후 비로소 나의 주도권을 되찾는 순간이다. 꾹 눌러왔던 내 의지로, 온전한 내 선택만으로 즐기는 저녁 시간인 것이다.


 물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도 즐겁다. 그러나 원하는 안주와 술을 눈치 보지 않고 정할 수 있다는 점, 비싼 외식 물가에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 지쳐 졸리면 바로 잘 수 있다는 점은 혼술만이 지닌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한 주간 수고한 나의 긴장을 완전히 푸는 수단이 돼 주는 것. 그게 가장 좋은 점이다. 긴장으로 뭉쳤던 어깨 근육이 풀어지고 굳었던 얼굴도 제 표정을 되찾는다. 다음 날 늦잠 자도 되니 빡빡했던 마음의 빗장도 느슨해진다. 다이어트를 위한 저녁 식단으로부터 해방되고 자기 계발 목적의 직장인 수업도 잠시 잊는다.  

 


Photo by Trude Jonsson Stangel on Unsplash


 취기가 조금 오르면 좋아하는 팝송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 틀고 혀를 굴리며 따라 불러 본다. 그러다 보면 흥도 나고 열도 나서 두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럴 땐 차고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고 입안에서 요리조리 녹여본다. 그러다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지치면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배부르게 먹고 취기가 오른 채로 보드라운 극세사 이불에 볼을 비비면 유토피아가 별건가 싶다.


 아… 이번 주엔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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