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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세윤 Jun 16. 2021

억울하지 않도록 새로운 것 좀 시도해 보겠습니다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일까

#1.

요새 저녁엔 거의 매일 샌드위치를 먹는다. 혼자 사는 내가 간단히 한 끼로 먹기 편하고 소화시키기에도 부담 없기 때문이다. 동네에 단골 샌드위치 가게도 생겼는데, 포크마리네·에그·롤햄 샌드위치 세 가지 메뉴만 파는 단출한 곳이다. 처음 방문했을 땐 포크마리네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속에 꽉 찬 고기의 짭조름한 맛과 담백한 빵, 고소한 달걀이 잘 어우러진 맛이었다. 그다음 방문했을 땐 에그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누가 그랬다. 아는 맛이라서 더 먹고 싶은 거라고. 에그 샌드위치는 딱 그런 익숙한 맛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메뉴, 롤햄 샌드위치는 쉽사리 주문하지 못했다. 메뉴 사진 속 샌드위치엔 양상추만 가득하고 햄은 둘둘 말려 구석진 곳에 쪼그라들어 있었다. 롤햄 샌드위치가 아니라 양상추 샌드위치 아닐까, 맛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망설이다가 다시 포크마리네와 에그 샌드위치를 번갈아 주문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단골인데 모든 메뉴를 도전해보고 싶어서 얼마 전 용기를 내 롤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어느새 무척 더워진 날씨에 땀을 닦으며 한 손에 샌드위치를, 다른 손엔 가방을 들고 힘겹게 계단을 올라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고, 냉장고에선 시원한 탄산수를 꺼냈다. 입안을 톡 쏘는 탄산수를 한 모금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롤햄 샌드위치를 처음으로 맛봤다.


 상큼했다. 한 입 베어 먹자 아래로 쏟아지려는 두툼한 양상추를 급하게 빵으로 붙잡아야 했다. 아삭한 양상추와 적절히 짭짤한 햄의 궁합이 잘 맞았다.


“뭐야, 나 롤햄 샌드위치 좋아하네.”


논란의 샌드위치, 롤햄 샌드위치인가 양상추 샌드위치인가




#2.

올해 초, 갑자기 저린 팔 때문에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침대에서 뒤척였다. 그 후 2주간 한방 약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는데,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같은 쪽 다리까지 저리기 시작했다. 저릿저릿한 고통이 몸 오른편을 관통했다. 덜컥 겁이 나 다음날 아침 곧장 병원에 갔다. X-ray를 찍으니 경미한 디스크 징후가 관찰된다고 했다. 이미 디스크로 고통받은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니 호전되려면 도수치료, 심하면 수술 같은 방법이 있는데 어차피 임시방편이고 자세 교정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필라테스를 추천받았다.


 그런데, 선뜻 필라테스를 등록하기가 좀 망설여졌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우선 필라테스가 힘들지 않을 거란 짐작 때문이었다. 자세 교정이 목적이지만, 이왕 운동하는 거 땀도 뻘뻘 흘릴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내 상상 속 필라테스는 땀이 안 날 것 같은 우아한 운동이었다. 그간 스피닝, 헬스, 러닝 같은 격한 운동을 주로 한 내게 필라테스가 잘 맞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또, 필라테스를 하기에 내가 충분히 날씬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필라테스 하는 여성 사진을 접할 때면 주로 마른 몸에 딱 붙는 레깅스 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왠지 나는 그녀와 같은 바운더리 안에 속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부터 앞섰다.


 그래도 일단 해보라는 지인의 추천으로 반신반의하며 체험 수업을 신청했다. 본격적으로 체험을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어느새 한쪽 뺨을 타고 땀이 흘렀다. 다리는 후들거려서 수업 후 계단을 내려갈 땐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그리고 운동이 힘들어 그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내 배가 나왔는지, 들어갔는지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선생님은 가까이 붙어 자세를 잡아 주시고 내 몸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 이외에 다른 이가 내 몸에 이토록 집중해주다니. 왜 직장 생활에 지친 수많은 여성이 이 운동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눈을 못 뜰 정도로 환한 햇빛에 개운함이 밀려왔다.


“나, 필라테스랑 잘 맞는 사람이었구나.”



현실은 이렇습니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그날 롤햄 샌드위치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난 평생 그 상큼한 맛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필라테스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정신까지 치유되는 운동을 놓치고 살았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억울하다. 억울하지 않도록 앞으론 더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예정이다. 내 취향이 무엇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p.s. 아직도 필라테스 선생님이 말하시는 '갈비뼈 모아요'가 뭔지 모르겠고, 오리궁둥이 만들기와 허리 펴고 골반 접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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