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벌레 겁쟁이의 한탄
"다음엔 엘리베이터 있는 집으로 이사 가야지."
늦은 밤, 등을 타고 흐른 땀에 딱 붙어버린 티셔츠를 떼 내며 4층 계단을 올랐다. 띡띡띡띠딕- 띠리릭, 도어록을 해제하고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벽을 더듬거리며 원룸 자취방의 불을 켰다.
'사-사사사삭-'
"뭐, 뭐야, 으아아아아악-"
불을 켜자 들키지 않겠다는 빠른 기세로 좌식 소파 뒤에 숨어버린 바선생.
빠르게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정지된 사고 회로를 재가동하려 애썼다. 우선 현관 쪽 벽에 등을 딱 붙인 후 그놈과 마주치지 않게 게걸음으로 걸었다. 방구석에 다 달아 청소기를 움켜잡고 헤드를 분리했다. 아, 청소기는 안 되겠다. 헤드를 분리하니 너무 짧아져 그놈과 내가 너무 가까워질 것 같았다. 다른 무기를 찾는다. 바로 옆 전기 모기채를 잡았다. 이거면 되겠다. 중간에 한 번 접히기도 하는 긴 사이즈의 모기채, 그리고 그놈에게 가해질 강력한 전기 충격.
좌식 소파를 전기 모기채 끝부분으로 살짝 밀어 봤다. 엉덩이는 뒤로 쭉 빼고 한쪽 팔만 뻗어서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눈은 크게 떴다. 놓치면 오늘 잠은 다 잤다. 절대 놓쳐선 안 된다. 그 순간, 가림막이 되어준 좌식 소파가 사라지자 당황한 놈이 다시 한번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내 안에 내재된 순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놈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지지직-지직-직-'
"휴..."
한 손엔 전기 모기채를, 다른 손엔 아직 반도 차지 않은 종량제 봉투와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일단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두루마리 휴지를 몇 차례 둘둘둘 손에 두껍게 말아 눈을 질끈 감고 놈을 종량제 봉투에 밀어 넣었다. 봉투가 반도 차지 않았지만, 놈의 사체를 집에 들일 순 없어 그대로 곧장 일층 쓰레기장에 투척.
집에 도착하자마자 답답한 마스크를 벗었다. 휴, 살 것 같다. 날도 더운데 마스크는 도대체 언제 벗을 수 있는 거야, 하면서 마스크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는 그때. 갑작스러운 침입자의 공격에 놀랐는지 쓰레기통 속 날파리 떼가 한 번에 슈슉- 하고 날아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악-"
신발장 위에 있는 에프킬라를 손에 들고 놈들을 향해 사정없이 뿌려댔다. 강력한 에프킬라 분사 공격에 날파리들이 하나, 둘씩 힘을 잃고 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콜록콜록-"
매캐한 공기에 나 역시 질식할 것 같아 창문을 활짝 열고 바닥에 떨어진 사체들을 청소했다.
더운 여름이라 신경 써서 버린다고 버렸는데, 미쳐 신경 쓰지 못한 쓰레기가 섞여 있던 건지 날파리 떼가 엄청났다. 혼자 살다 보니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모두 꽉 차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렇게 벌레가 꼬이고 시큰한 냄새가 심할 때면 할 수 없이 반도 채 차지 않은 쓰레기봉투를 내다 버린다.
본가에 살 때 벌레를 발견하고 소리를 꽥- 지르면 항상 듣던 말이다. 덩치랑 벌레 잡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싶다가도 나는 왜 벌레 한 마리 못 잡아서 온 가족을 오밤중에 깨울까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하니 벌레를 대신 잡아줄 구원자가 이젠 없다는 걸 깨달았다. 벌레를 잡는 건 나 같은 겁쟁이에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만약 그날 용기 내 바선생을 잡지 못했다면 난 아마 그날은 일단 집을 버리고 나왔을 것이다. 오버 아니고 정말이다.
나 같은 벌레 겁쟁이들이 많은 것인지 당근마켓에선 주기적으로 '벌레 좀 잡아주세요ㅠㅠ 사례금 드립니다'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구원자가 집에 와서 벌레를 대신 잡아주면 정말 좋겠지만,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구원자가 오는 동안 내가 먼저 그 벌레를 한 곳에 가둬두거나, 정확한 위치 파악을 해두지 않으면 구원자의 방문이 무의미 해질 수 있다.
=> 벌레란 자고로 빠르게 움직여 자신의 몸을 숨기는 데 능한, 생존력 높은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어딘가 가둬두지 않으면 금세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일쑤다. 구원자가 공간 투시를 할 수 있지 않은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를 잡아줄 순 없다.
2)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
=> 나의 경우 두 번째 이유 때문에 구원자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모르는 사람을 괜히 들였다가 벌레 공격보다 더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일수록 벌레 문제는 돈과 직결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 차지 않은 쓰레기봉투를 버려야 하는, 선택권이 없는 낭비는 물론이고, 벌레를 대신 잡아줄 구원자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에프킬라, 하수구 트랩, 시나몬 캔들 같은 일차원적인 해결책을 넘어서 근원적인 방법을 모색한다면 돈이 많이 들 수 있다.
얼마 전 우리 팀 부장은 모 연예인이 광고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샀다고 자랑했다. 더는 날파리 떼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며. 반면, 나 같은 1인 가구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구입하는 게 부담스럽다. 가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그 처리기를 돌릴 만큼 쓰레기가 나오지도 않는다. 이래저래 혼자 사는 사람은 손해를 본다.
날파리 퇴치 목적이라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집을 항상 시원하게 유지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지인 중 한 명은 더위를 잘 타 혼자 사는 데도 여름철엔 에어컨을 계속 틀어 둔다. 그래서인지 그 집엔 날파리 떼가 출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방법을 택하면 매월 받아 드는 전기세 고지서에 등골까지 무척 서늘해질 것이다. 전에 고(故) 삼성 이건희 회장 집 전기세가 중소기업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온도며, 습도며 모든 환경 조건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라는데, 그렇다면 그 집에도 날파리 떼가 절대 출몰하지 않겠지…
얼마 전, 유튜브 <곽정은의 사생활>이라는 채널에서 일 년에 약 30만 원 정도의 돈만 내면 세스코가 매달 해충 관리를 해주니 편하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이제 모기도 난리 칠 텐데 나도 그거 해야 되나. 벌레 때문에 다 돈이네, 정말.